[북리뷰]미덥지 않은 아일랜드인 탐정

밤의 파수꾼
켄 브루언 지음·최필원 옮김·RHK·1만5000원

어느 영화에선가 들었다. 미국에 온 아일랜드인은 경찰 아니면 도둑이라고. 아일랜드가 무대인 <밤의 파수꾼>을 읽다 보니 그 대사가 그럴듯했다. 잭 테일러는 가르다라고 부르는 아일랜드의 경찰이었다. 늘 술에 취해도, 간혹 폭력을 휘둘러도, 협잡에 얽혀 있어도 여간해서 잘리지 않는 가르다에서 잭은 쫓겨났다. 거들먹거리는 부패 공무원을 패고 아일랜드 최초의 사립 탐정이 된 것이다. 나름 사건은 잘 해결하지만 언제나 술에 취해 있다. 딸 새라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며 조사해달라는 앤 핸더슨의 의뢰를 받는다. 새라가 일했던 회사를 찾아가고, 이제는 간부가 된 과거의 경찰 동료를 찾아가기도 한다. 나름 잭은 열심히 수사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열심인 것은 술을 마시는 행위다. 날마다 술집에 들르고, 수상한 친구를 만나고, 누군가와 싸우는 등등 잭의 기이한 행동을 쫓아가다 보면 사건은 오히려 뒷전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어긋난다. 용의자는 죽어버리고, 친구인 서튼은 노숙자를 공격한 청년들을 응징한다. 또 다른 친구의 죽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새라의 자살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마구 벌어지고 잭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잭은 취한 채로 마구 떠돌아다니며 문제를 격화시킬 뿐이다.

켄 브루언의 <밤의 파수꾼>은 잭 테일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다. 그의 이력과 가족사, 성품과 장단점까지 어지럽게 나열된다. 아버지는 언제나 책을 읽으라고 권유했고, 어머니는 필요 없다고 타박했다. 가족은 잭에게 결코 위안이 아니었고 머무를 수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내게는 엄청난 죄의식이 있었다. 여기에 약간의 후회와 넘치는 자기 연민을 더하면 전형적인 알코올의존자가 탄생한다.”

<밤의 파수꾼>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탐정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치밀한 트릭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건의 단서를 따라가다가도 엉뚱한 곳으로 빠져 미적거린다. 잭의 망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책을 덮고 나면, 아일랜드라는 구체적인 공간이 떠오른다. 그런 비참한 사건들이 왜 벌어지는지 알 것 같다. 켄 브루언은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25년간 세계를 떠돌며 영어교사를 했고, 더블린으로 돌아와 비로소 작가가 되었다. <밤의 파수꾼>은 전통적인 미스터리가 아니라 범죄를 통해서 사회를 말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런던 대로> 역시 주인공은 늘 책을 읽고 거리를 부유하며 우리의 일상으로 존재하는 범죄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북리뷰

어쨌거나 사건은 해결되고, 그러나 진실은 다른 곳에 있고, 잭 테일러는 자신의 정의를 지킨다. 아마도 다음 편부터는 조금 더 탐정의 본분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밤의 파수꾼>의 치욕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잭은 무언가를 배웠을 테니까. “사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다. 우리가 흐르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내가 태어나 배운 것들 중 가장 슬픈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걸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켄 브루언의 소설은 마치 안개 속의 풍경을 걷는 것처럼 몽롱하고 우울하다. 그럼에도 잭은 언제나 농담을 잊지 않는다. 암울하니까 웃어야 하고, 뭔가에 취해야만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밤의 파수꾼>을 읽고 나면 진한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진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