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오래된 집들 세월의 사연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정경진 옮김·한스미디어·1만2000원

1990년대 후반, 일본의 공포영화가 세계를 휩쓸었다. 저주를 누군가에게 전달해야만 죽지 않는다는 <링>도 섬뜩했지만, 귀신 들린 집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 악령이 달라붙는 <주온>은 정말 소름끼쳤다. 절대로 도망칠 수 없는 지박령의 저주.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도 집에 얽힌 기담 몇 개를 들려준다. 대부분 오래된 집들이다. 누군가의 인생이 그득하게 담겨 있는 집들. 평온하고 즐거운 일들만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인생이 그럴 리가 없다. 아동이나 노인을 학대하기도 하고, 참혹한 사건이나 저주, 질투가 뒤섞이기도 한다.

정념이 지나치면, 억울함이 도를 넘으면 죽은 후에도 무엇인가 남게 된다. 혹은 집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면 흠집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추억이 담긴 흠집이 있는가 하면 문제가 되는 흠집도 있습니다. 오래된 집에는 그런 흠집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시간이 아로새겨지는 것이죠.’ 그래서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대체로 슬프고 쓸쓸하고 한편으로 따스하다. 인간사가 그렇듯이.

죽은 가족이나 친척에게 집을 물려받은 이들이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안뜰로 통하는 미닫이문이 종종 열려 있다거나, 비만 오면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을 보게 된다거나 하는 일들이다. 집을 고치면 그런 일들이 사라질까 싶어서 목수를 부른다. ‘영선 가루카야’는 오나바라는 목수가 운영하는 가게의 이름이다. ‘저는 목수입니다. 흠집을 완전히 없애는 거면 집을 헐고 다시 짓는 일이 될 테니 공무소에 부탁해야겠죠.’ 목수는 고치는 일을 한다. 부수거나 없애는 일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들을 고치고 보완하여 다시 쓸 수 있게 만든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를, 나를 없애고 다시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집을 떠나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 하지만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이주한 고교생이거나 싱글맘이거나 고택을 마지막 거처로 생각하고 온 사람들이다. 어떻게든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함께 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마음만으로는 안 되니까 오나바를 부른다. ‘문제가 되는 흠집은 문제가 되지 않게 고친다. 남겨줘도 좋은 흠집은 더 커지지만 않게 손을 본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하는 목수에게 부탁을 한다.

북리뷰

동양 판타지 <십이국기>로 유명한 오노 후유미는 공포소설 작가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뱀파이어를 동양적으로 해석한 <시귀>를 비롯하여 <동경이문> <고스트 헌트> <흑사의 섬> 등을 썼고, 근래에는 괴담 잡지 <유>에 연재했던 <귀담백경>과 <잔예> 등 ‘실화 괴담’ 류의 공포물을 주로 내고 있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도 괴담의 연장선에 있지만 전작들에 비하면 두려움과 섬뜩함보다는 애잔한 이야기들이 많다. 만화 <충사>의 작가인 우루시바라 유키의 표지도 소설의 분위기에 잘 들어맞는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 최대한 달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함께 지내야 한다. 세파에 휘둘리며 피곤한 날을 보낸 사람이 집에 돌아가서 마저 무언가에 시달려야 한다면 정말 참담하다. 오나바의 말처럼 ‘집은 본래 사람을 지키고 포용해주는 장소’니까.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