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열강으로 둘러싸인 한반도 해법

외교상상력
김정섭 지음·엠아이디·1만5000원

북한의 로켓 발사와 개성공단 전면 폐쇄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최첨단무기를 동원하고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을 보고 있으니 얼마 전 읽은 <크리스토퍼 힐 회고록>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어릴 적 힐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힘으로 하지 말라, 뭐가 잘 안 될 땐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배웠단다. 그게 힐이 외교관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일 텐데, 작금의 위기 앞에서 새삼 그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힘으로 밀어붙이기 전에 한반도 위기의 원인을 찾는 것, 쉽지 않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최근 출간된 김정섭의 <외교상상력>은 그 출발점으로 손색이 없다.

카이스트 교수이자 국방부 공직자인 김정섭은 이론과 실무를 겸한 이력에 걸맞게 이 책에서 지난 100년의 국제정치를 이론적·역사적으로 개관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모색한다. 이론적으로 현실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필자는 구질서를 지탱하던 힘의 배분이 바뀔 때 국제체제는 변모한다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이 미국 주도의 현존 질서를 위협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라고 말한다. 물론 아직까지 미국은 국방비만 해도 전 세계 군비의 40%, 중국의 4.3배가 넘는 최강대국이다. 그래서 혹자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건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비판하지만, 필자는 제국의 흥망성쇠를 연구한 폴 케네디에 의거해 흥망의 관건은 군사력보다 경제력이며, 이 점에서 중국 경제의 성장은 부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더구나 중국은 이미 국방비에서 세계 3위인 러시아의 두 배, 일본의 세 배가 넘을 만큼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이 변화가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지난 100여년간 한국은 주변 국가들의 각축 속에서 식민지, 전쟁, 분단이라는 고통을 겪었고 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지역질서가 유지되면서 그 우산 아래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왔다. 그런데 이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 중국, 일본이라는 세계 1, 2, 3위의 대국이 공존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내부의 갈등에 매달려 이 전체상을 놓친다면 백성의 저항을 억누르려 외세를 끌어들였다가 왕실도 나라도 모두 망했던 역사가 반복될 터, 정확한 현실 인식과 함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외교적 상상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북리뷰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조차 군국주의라는 비난에 앞서 내적 논리를 살필 만큼 객관적 인식을 앞세우는 필자는, 오늘의 북핵문제도 따지고 보면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이 동아시아 안보협력구조로부터 고립된 데서 기인하며, 따라서 “근원적으로는 북·미관계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북핵의 위험에 노출된 당사자인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과거 서독의 브란트 총리나 김대중 정부가 그랬듯, 적극적 외교로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서독의 포용정책이 강경한 동독 정부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동독 주민에게 영향을 미쳐 결국 서독의 흡수통일에 기여한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이 대내외적으로 ‘힘에 의한 압박’만을 고집하는 사이, 중국과 미국은 외교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까지 한반도 전체가 세계에서 고립될 판이다.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