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슈퍼레이서 엔지>-레이서를 이긴 시골소년이 ‘히든 챔피언’

자동차 경주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허선 감독의 <슈퍼레이서 엔지>는 한국 판 <카>다.

두들산 마을에 사는 엔지는 엄마를 도와 피자 배달을 하는 소년이다. 엄마는 엔지가 피자의 달인이 되기를 바라지만 엔지는 최고의 레이서가 되는 꿈을 꾼다. 마을 산길에서 레이싱 연습을 하던 엔지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우상인 레이를 만난다. 이때 세계 최고의 레이싱팀인 라이트닝팀이 경주를 위해 두들산 마을을 방문한다. 엔지는 이들에게 도전장을 낸다.

우연히 도로에서 만난 라이트닝팀은 엔지를 무시한다. “이런 시골에 대단한 슈퍼레이서가 있는지 몰랐다”며 비꼬기도 한다. 하지만 ‘시골촌뜨기’인 엔지는 마침내 라이트닝팀을 넘어선다. 엔지는 사실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지 드라이빙 실력은 뛰어났다. 피자 배달길에 나서는 엔지는 자유자재로 좁은 마을 골목을 주파한다. 레이서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훈련이다. 또 틈이 날 때마다 마을의 곡선주로에서 연습을 하며 실력을 키운다.

엔지처럼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알고 보니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기업이 있다. ‘히든 챔피언’이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펴낸 <히든 챔피언>에서 유래됐다.

[영화 속 경제]<슈퍼레이서 엔지>-레이서를 이긴 시골소년이 ‘히든 챔피언’

헤르만 지몬은 히든 챔피언이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 또는 소속 대륙에서 1위를 차지하며, 매출액이 40억 달러(4조원) 이하인 기업으로 규정했다. 부품소재나 핵심기술, 고품질의 소량생산 분야에 많다. 최근 말하는 강소기업(强小企業·작지만 강한 기업)과 의미가 유사하다. 지몬은 “한 국가의 수출은 소수의 대기업에 의해 결정된다는 통념과 달리 수출능력이 뛰어난 중간규모의 회사들이 많아야 한다”며 “독일이 세계 수출 1위국 지위를 지난 7년간(2002~2008년) 차지한 비결은 1000개가 넘는 히든 챔피언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몬의 분석을 보면 히든 챔피언에 속하는 기업들은 평균 60년 이상의 기업수명, 평균 매출액 4300억원, 평균 성장률 8.8%, 분야별 세계 시장 점유율 33% 이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히든 챔피언으로는 세계 애완동물 목줄 시장의 50%를 점유하는 ‘플렉시’와 연간 18억개의 연필을 수출하는 ‘파버 카스텔’이 있다. 한국의 히든 챔피언은 25개 정도로 추산됐다. ‘히든 챔피언’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일은 26.1%이지만 한국은 0.35%에 불과했다. 2008년 기준 한국의 히든 챔피언으로는 절삭공구를 생산하는 YG1(세계 시장 1위, 세계 시장 점유율 60%), 모터사이틀 헬렘을 생산하는 HJC(세계 시장 1위, 점유율 20%) 등이었다. 2012년에도 히든 챔피언을 선정해 봤는데, 독일이 1307개로 가장 많았고, 미국 366개, 일본 220개 등이었다. 중국의 히든 챔피언도 68개에 달해 한국(23개)보다 3배가량 많았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수출입은행은 자체 기준으로 ‘히든 챔피언’을 선정해 중소·중견기업 육성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시골 구석구석에 엔지와 같은 예비 레이서들이 많다면 이 나라는 레이서의 강국이 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경제

<슈퍼레이서 엔지>는 기아자동차가 중소제작사인 ‘크레이지버드 스튜디오’를 지원해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엔지가 타는 레이싱카는 기아차 K5를 많이 닮았다. 기아차는 앞서 변신로봇인 <또봇>을 제작지원해 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GM이 <트랜스포머>를 통해 자차를 홍보하는 것처럼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한 감성마케팅이 자동차업계에 불붙고 있다. 자동차 제작사가 만든 최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슈퍼레이서 엔지>는 한국 자동차 미래의 고객들을 얼마나 사로 잡았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