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복수와 증오, 살기 위한 선택

별도 없는 한밤에
스티븐 킹 지음·장성주 옮김·황금가지·1만5000원

스티븐 킹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잡으면, 맹렬하고 망설임 없이 흘러간다. 한 번 말려들면 헤어날 길이 없다. 중편집 <별도 없는 한밤에>는 4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22>에서 20세기 초 아내를 살해한 시골 농장의 남자는 운명 혹은 죄책감 때문에 몰락한다. <빅 드라이버>에서 강연을 다녀오다가 성폭력을 당한 추리작가 테스는 직접 가해자를 응징하기로 결심한다. <공정한 거래>에서 암에 걸린 중년의 스트리터는 자신이 증오하던 친구에게 모든 불운을 넘겨버리고 승승장구한다.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27년간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온 다아시는 남편이 연쇄살인범인 것을 알게 된다. 4편의 이야기 모두 복수와 증오의 소용돌이가 담겨 있다. 한 번 빠지면 도망칠 수 없는, 비범한 상황에 놓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휘몰아친다.

그들은 모두 평범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온다. 누구는 가장 사악한 선택을 하고, 누구는 가장 필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걸 선과 악으로 나누기는 힘들다. 어디에나 선의는 있고, 어디에도 죄악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다. 유일하게 초자연적인 소재가 곁들여진 <공정한 거래>의 스트리터는 삶을 연장하는 대신 가장 증오하는 자가 누구인지 악마에게 알려준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고, 언제나 그보다 잘나고 잘나갔던 죽마고우. 스트리터는 늘 그에게 패했고, 열등감에 시달렸고, 미웠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던져준다. 암으로 죽어가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초라하고 얄팍한 내 인생이 끝나간다는 회한이 없었다면 스치듯 지나가는 감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순간, 스트리터는 자신이 악마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빅 드라이버>의 테스는 성폭력을 당한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자신이 뉴스의 화젯거리가 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용서할 수가 없다. 게다가 범인에게는 공모자도 있었다. 견딜 수 없었던 테스는 총을 들고 그들을 찾아간다. 추리작가인 테스의 목표는 잡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짜인 것이 아니라 예측은 빗나가고, 어긋나고, 실수를 저지른다. 영화 <브레이브 원>의 조디 포스터처럼 범인을 찾아내서 죽이는 암울한 이야기인데, 묘하게도 분위기는 테스가 쓰는 코지 미스터리처럼 경쾌하다. 끔찍한 폭력을 당하고, 다시 끔찍한 폭력을 저질러야만 하는 테스의 마음이 그랬을까. 가라앉아만 있으면 행동할 수 없으니까.

북리뷰

<별도 없는 한밤에>의 세계는 ‘어두운 삶, 모든 진실이 거꾸로 적히는 곳’이다. 거꾸로 된 세계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어둠과 직면하고 빛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는, 참혹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 선택이 결코 정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네 편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무고한 희생자부터 간악하게 자신을 합리화하는 악인까지 다양하지만, 그들의 거리는 멀지 않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완벽하게 정당하고 옳은 결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찾아나갈 뿐이다. 결국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다음의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