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식민과 분단의 뼈아픈 역사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이범준 지음·북콤마·1만8000원

일본 안보법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지켜보며 작정하고 역사책을 찾았다. 눈에 드는 책이 없어 조바심이 날 무렵 우연히 논픽션 작가 이범준이 쓴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를 발견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책인데 혹시나 하고 책장을 넘기다가 그대로 사로잡혔다. 몰랐던 사실(史實)과 잘못 알고 있던 상식을 하나하나 깨우치는 담백한 문장에 놀라고, 민족과 국가라는 완고한 경계에서 꽃처럼 피어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동했다. 사회적 이슈를 다룬 많은 논픽션들이 필자의 주장이 앞선 나머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과 달리, <일본제국 vs. 자이니치>을 쓴 이범준은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거나 누구 편을 들지 않는다. 대신 그는 질문한다. 왜 재일동포나 재일조선인이라는 말 대신 ‘자이니치(在日, 일본에 있는)’라는 일종의 형용사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지, 왜 고통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실재하지도 않는 ‘조선’이란 국적을 고수하는지, 왜 일본식 이름을 쓰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국적은 안 바꾸는지, 왜 남한 출신 자이니치들이 북조선행 배를 탔는지… 책은 숱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솔직히 나는 그것만으로도 놀랍다. 감당하기 힘든 질문은 애초 제기하지 않는 게 필자들의 은밀한 관행이므로. 그러나 그는 피하지 않고 물을 뿐 아니라 410일 동안 일본 전역을 발로 뛰는 성실한 취재를 통해 나 같은 평범한 독자가 궁금해 하는 이 모든 질문들에 답한다. 덕분에 ‘자이니치’란 모든 재일동포가 아니라 식민지 시절에 건너간 조선인과 후손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들에게는 조선적, 한국적, 일본적 같은 국적이 아니라 ‘조선반도 출신’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자이니치와 북조선의 적극적 의지로 추진된 줄 알았던 이른바 ‘북송사업’이 실제론 식민지배의 결과인 재일조선인들을 처리하기 위해 미국의 동의 아래 일본이 공작한 것이며, 이승만 정부는 이들의 남한 이주를 반대했을 뿐 아니라 북송선 폭파까지 시도했음을 알았다. 그랬던 한국정부가 지금은 조선적의 입국을 막고 한국적을 강요한다는 사실도. 나아가 조총련의 영향 아래 있는 조선학교의 재학생 중 과반수가 한국적이며, 이들이 한국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자이니치의 민족교육을 위해 한국이 지원하는 한국학교는 없다는 것을 알았고, 상황이 이런데도 재일민단은 일본의 조선학교 차별을 지지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세계 역사상 자이니치처럼 외국에서 70년 넘게 살며 조국의 국적을 유지하는 경우는 없다 한다. 하긴 중국이나 미국에 사는 대다수 해외동포가 현지 국적을 취득하지만 그들을 한민족이 아니라고 하거나 국적 때문에 입국을 막는 일은 없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 차별과 고통을 겪어온 자이니치가 조국에서까지 차별을 받는가?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백충은 왜 한국적으로 바꾸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조선적으로 태어났고 그 배경에는 뼈아픈 식민과 분단의 역사가 있다. 잘못된 세상이 바뀌어야지 죄 없는 내가 바뀌어야 할 일이 아니다.”

북리뷰

100여년 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되풀이되는 오늘, 역사는 묻는다. 국가는 무엇이고 민족은 무엇인가? 누가 죄인이며, 누가 이 잘못된 세상,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것인가?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