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키스 에이프의 ‘잊지 마’를 들어보세요

어떤가. 어딘가 불편하지 않은가. 솔직히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 ‘잊지 마’는, 영어 ‘It G Ma’로 세계 힙합계에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을 던진 곡이다.

1990년대 후반에 이미 현역으로 전설이 된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H.O.T.’와 ‘젝스키스’ 등이 활동하던 그 무렵에 8명으로 구성된 그룹 ‘OPPA’가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는 이 알파벳에 의미를 부여했겠지만, 소리나는 대로 ‘오빠’라고 불린 그룹이었다. 이 단어, 즉 ‘oppa’는 케이팝 한류 바람이 불면서 동아시아 일원에서는 하나의 명사로 현재 쓰이고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팬들이 아이돌 스타의 공연 때 ‘oppa’라고 크게 써붙인다. 그룹 슈퍼주니어의 일부 멤버들이 유닛을 구성해 활동하면서 발매한 디지털 싱글의 제목도 ‘떴다 오빠(Oppa, Oppa)’였다.

하여간 오래전에 ‘OPPA’라는 그룹이 있었는데, 잦은 멤버 교체 등의 어려움을 겪다가 2집을 끝으로 해산한 이들의 1집 히트곡이 ‘애국심’이었다. 이 노래, ‘애국심’이 어느 정도 인기를 끌어서 팀 이름대로 한때는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기도 했다.

이 노래에는 “관순누나 만세 불러 지킨 이 나라 갈라놓은 자, 침략자야 너 미안하지 않니” 식으로 ‘애국심’이 한가득 들어 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지배, 분단과 통일, 교육 문제 등을 소재로 삼아서 어느 정도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평지풍파를 일으킬 정도의 음악적 소란은 되지 못했다. 이미 이와 같은 소재를 뮤직비디오와 실제 공연에서 탁월한 퍼포먼스로 군계일학의 경지로 펼쳐낸 ‘서태지와 아이들’이 선행주자로 질주한 다음이었으므로 ‘OPPA’는 이러한 흐름에 올라탄 정도의 평가에 그쳤다. 음악도 그러했고 의상도 그러했고 퍼포먼스도 그러했다. 한반도 현대사의 상처와 비극이 전면에 도드라졌지만, 음악 그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대중음악 연구자 사이먼 프리스가 말한 대로 음악의 힘은 무엇보다 ‘사운드의 힘’이지 결코 도드라진 가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잊지 마’를 공동 작업한 오카시안과 키스 에이프(오른쪽) | 키스 에이프 인스타그램

중학교 3학년인 내 아들이 들려준 음악
특히 대중음악에서 ‘새로운 사운드의 힘’은 중요하다. 대중음악은 세상의 모든 음악들 중에서 ‘something else’를 중핵으로 삼는다. 이 단어는 ‘뭔가 다른 것’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 ‘다른 것’이 ‘특별한 것’일 때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컨대 국내의 어느 어학교재는 “She is something else. What a looker.”라고 쓰고 이를 “저 여자 굉장히 예쁘게 생겼군. 기가 막힌 미인이야”라고 풀이한다. 대중음악에서 생명처럼 여기는 ‘something else’란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오넷 콜맨이나 캐넌볼 어들리 같은 재즈의 거한들이 1958년에 발표한 작품들의 음반 제목도 바로 ‘Something Else’, 즉 ‘이 음악은 니들이 평소 듣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거야’라는 것이었다.

그룹 ‘OPPA’의 ‘애국심’은 그들 나름의 음악적 열정과 나라 사랑에 대한 각별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어떤 것, 특별한 것, 대중음악의 절체절명의 과제인 ‘Something Else’가 아니었다.

물론 ‘새롭다’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음악 내적인 새로움도 있지만 ‘신상품’이라는 점 또한 강력하다. 대중음악 ‘시장’에 새로 나온 ‘신상’이어야 한다는 숙명 말이다. 대중음악은 새로운 어떤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운드, 새로운 춤, 새로운 퍼포먼스, 심지어 그저 새로운 얼굴이라도 돼야만 한다.

‘신상’이 ‘시장’에 나오면 그 ‘시장’은 마법과 같아서, 단순히 ‘신상’을 소비하는 정도가 아니라 당대의 다양한 감수성이 동시다발적으로 반응을 한다. 어떤 이는 그 신상에서 새 얼굴을 보고, 또 어떤 이는 새 안무를 보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사운드에 열광한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이나 황병기의 ‘가야금산조’는 지휘자와 연주자에 의해 ‘특별하고도 새로운 것’이 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류 문화유산’에 속하는 것으로, 이들의 음악에서 현대도시의 첨예한 지점에서 늘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운 상황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에 직접적으로 인입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병렬 연결이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중음악에는 이 열병과도 같은 감수성, 당대의 가장 젊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장된 다이너마이트와도 같은 강력한 감정들이 직렬 연결된다.

그 점에서 대중음악은 ‘새로운 특별한 것’이 돼야만 하는데, 이로써 한 세대의 감수성의 교체가 이뤄진다. 감수성의 세대교체, 머리로는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음악을 ‘이해’하고 ‘긍정’하고 심지어 ‘지지’까지 하는데, 마음으로는 온전히 그 새로움을 다 승인하기 어려운, 그런 상태를 말한다. 만약 당신이 EXID의 ‘위 아래’를 듣고(혹은 그 뮤직비디오나 공연을 보고) 마음속 어딘가가 조금이라도 불편했다면, 당연하다. 당신은 나처럼 물러가는 세대이고, 그 음악은 결코 물러가는 세대더러 듣거나 보라고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음악의 ‘새로운 어떤 것’을 유심히 보면, 20세기 중엽의 세대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도무지 승인하기 어려운 새로운 세대, 즉 21세기 중엽을 살아갈 세대들의 열병과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감수성의 시차 놓치면, 금세 늙고 만다
그 증거를 제시하겠다. 나는 <주간경향>의 주독자층, 즉 이른바 ‘기성세대’를 상정하고 이 글을 쓰는 중인데, 잠시 이 글을 읽는 것을 멈추고 키스 에이프(Keith Ape)의 <잊지마>(It G Ma)를 들어보기 바란다. 아니, 인터넷을 이용해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보기 바란다. … 아, 잠깐. 당신은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이 글을 읽고 있다. 그러지 말고 잠시 틈을 내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키스 에이프 잊지 마’를 검색해 듣거나 보기 바란다.

… 이제 다시, 얘기해 보자. 어떤가. 어딘가 불편하지 않은가. 솔직히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 ‘잊지 마’는, 영어 ‘It G Ma’로 세계 힙합계에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을 던진 곡이다. 키스 에이프는, 미국의 유명한 음악축제 ‘SXSW’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출중한 래퍼 켄 레벨(Ken Rebel)과 공동작업한, 뉴욕 시내를 거칠게 질주하는 음악과 영상도 찾아보기 바란다. 마음이 더 불편해질 것이다.

이 음악은 중학교 3학년인 내 아들이 들려준 음악이다. 가족이 다함께 어딘가로 가는 길에 “너, 요즘 뭐 듣냐?” 하는 내 질문에 자동반사적으로 들려준 음악이었고, 듣는 순간, 차 안을 이들의 음악이 꽉 채우는 순간, 나는 ‘Something Else’라고 느꼈다.

잊지 마 잊지 마 우리가 이찌방 / 빛이 나 빛이 나 우리가 빛이나 / 신경 꺼 너는 너 나는 나

이 노래와 영상에 비한다면, 한국 힙합을 주류 장르로 끌어올린 타이거 JK나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는 ‘건전가요’처럼 들린다. 최근 2~3년 사이에 곳곳에서 출몰한 힙합의 다양한 뮤지션들 중에서도 이 노래와 영상은 단연 ‘Something Else’로서 독보적이다.

이 노래와 영상을 지난주에 파주의 어느 도서관에서 ‘대중음악과 새로운 세대’라는 주제로 강의하면서, 청중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줬다. 그런 후에 어떤 느낌이 드는가 물어보았다. 40대 이상의 이른바 ‘기성세대’인 청중들은 대부분 불편하다고 말했고, 일부는 불쾌하다고도 말했다. 그러니 ‘Something Else’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렇게 한 세대는 ‘7080콘서트’나 ‘가요무대’로 물러가고, 공간만 잠시 함께 점유할 뿐,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가 거침없이 밀고 올라오는 것이다. 물러가는 세대더러 들으라고 만든 게 아니므로, 불편하고 불쾌한 것은, 당연하다.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부언하건대, 여기까지 읽으면서도 아직까지 ‘키스 에이프 잊지 마’를 찾아보지 않은 독자라면, 서두르기 바란다. 금세 또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감수성으로 충전된 새로운 음악을 들고 나올 것이다. 감수성의 시차를 놓치면, 금세 늙고 만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