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카이사르의 비극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다룬 4~5권입니다. 2000년도 더 전의 인물이지만 카이사르는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섯 가지라고 합니다. 지성과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이탈리아 역사 교과서에 따르면 오직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카이사르의 매력은 사실 그 이상입니다. 독재자 술라가 살생부에 올라 있던 그를 살려주는 대가로 아내와 이혼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카이사르는 “싫다”고 거부하고 망명길에 오릅니다. 그의 나이 19살 때의 일입니다. 어린데도 보통 배짱이 아닙니다. 카이사르는 또 로마의 여인들이 그의 애인이 되고 싶어 줄을 섰다고 할 정도로 바람둥이였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카이사르가 아내와 함께 참석한 파티에서 옛 애인을 만났습니다. 카이사르는 아내한테는 잠깐 기다리라고 말해놓고 참석자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옛 애인에게 다가가서 상냥하게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가 사귄 수많은 여자들한테 한 번도 원한을 산 적이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그의 문장은 또 어떴습니까. 폰토스 왕국을 정복한 뒤 로마 원로원에 보낸 전과 보고가 그 유명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입니다. 21세기에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그의 감각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카이사르는 사실 인간성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는 문장은 천하의 명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카이사르가 살았을 때는 물론 지금도 유효한 인간성의 적나라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도 볼 수 있었던 카이사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들에 의해 암살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카이사르 암살에서 얼굴 마담 역할을 한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애인이었던 세르빌리아의 아들입니다. 원래 폼페이우스 진영에 가담했다가 카이사르 군에게 포로로 잡혔는데, 카이사르가 애인의 아들이라고 특별히 챙겨서 살려줍니다. 카시우스 역시 폼페이우스파였다가 카이사르에게 투항한 사람입니다.

카이사르는 키케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한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소. 내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오.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

카이사르나 암살자들 모두 자기 생각에 충실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할지 모르지만 생각의 수준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카이사르는 공화정 체제가 초강대국으로 올라선 로마의 현실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새로운 국가개조를 꿈꿉니다. 다민족,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가 공존하는 로마제국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암살자들은 카이사르의 비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공화정이라는 기존 체제에 집착했던 그들이 본 것은 왕정이라는 공포였습니다. 그 어리석음이 로마의 역사를 바꿔놓습니다. 로마는 카이사르 암살 이후 13년 동안 혼란과 파괴와 무질서와 살육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암살자들의 최후도 그랬습니다. 다 자결하거나 살해당합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던 인간들이 만들어낸 어이없는 비극인 셈입니다. 이 불모의 비극은 인간의 역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됩니다. 역사의 교훈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심, 오만함 앞에선 아무 소용도 없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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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와 대비되는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지성도 없고 설득력도 없고, 그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사람. 누굴 탓하겠습니까. 우리 업보인 것을.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상함을 슬퍼하고 노래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