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저널리즘>-그저 ‘팩트’가 아닌 ‘이면의 진실’을 말하라

조 사코가 서문에서 밝힌 언론관은 ‘중립적이고 편파적이지 않은 자세를 유지하되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라’이다. 그는 권력의 균형이 무너진 곳에서 강자의 발언은 이리저리 샅샅이 검토해 다시 들려주고, 약자의 발언은 역사성을 담아 민낯 그대로 들려준다.

일주일 여정으로 예루살렘에 다녀왔다. 학회 참석차 간 거라 가기 전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가보니 달랐다. 국제법상 이스라엘의 국토가 아니라 점령지인 서안지구(웨스트 뱅크) 경계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주로 머물렀고, 그러니만큼 첨예한 종교, 민족, 국제정치 상의 ‘대립과 분쟁의 중심부’에서 어떤 감흥이든 느끼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허나, 이 자리에서는 도저히 다 풀어놓을 수 없을 만큼 다종다양한 감흥이라 하나만 짚어두겠다. 실상은 TV와 신문을 통해 보고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는 것,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깨달음이었다. 어느 정도 다를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더 달랐다. 이 정도면 기존의 정보는 ‘틀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조 사코 작가의 만화 <저널리즘> | 씨앗을뿌리는사람 제공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 ‘실상’
기존의 정보란 이런 거다. 먼저 허구 속에서의 이미지. 최근 즐겨 보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이 거의 전쟁터처럼 묘사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엄청나게 위험한 곳이라는 게 기본 설정이다시피 한 곳이 이-팔 지역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현실의 특정한 부분을 허구의 요소로 활용하는 대중문화로 인해 생겨난 선입견 혹은 인상이라고 해둘 수 있다.(학회에 참석 예정이던 한 학자가 가족의 만류로 참석을 취소하기도 했을 정도로 강력한 인상이긴 하지만)

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언론이다. 언론은 허구와는 다르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팩트’라고 더 자주 불리는 ‘사실’, 그것이 언론 기사의 기본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팩트’를 섬세하기 다루지 않는 한 기사도 미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미디어 환경, 기사 생산·소비방식, 언론사와 독자의 관심사 등등 다양한 연유가 있겠지만 그 다르지 않음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사항만이 뉴스로 만들어지고 그 뉴스가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니 ‘분쟁’과 ‘대립’의 폭력적 순간만이 선명하게 단편적인 ‘팩트’로 드러나 보인다. 결국 그 표피적 ‘팩트’는 ‘위험’이라는 이-팔의 주요한 인상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직접 현지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곳에서 5년 이상 생활한 한국인 교민들의 설명을 들으니 안개가 걷혔다. 정확히는 안개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눈을 다시 뜨고 보니 그게 ‘팩트’라는 이름의 안개였다는 걸 알게 된 셈이다. 빈틈이란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인식하는 순간 발견되는 것이다. 작년 세월호 참사 직후 언론 보도의 문제점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오보가 오보인지도 몰랐고, 또 정부의 보도자료를 많은 언론사들이 앵무새처럼 베껴 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최선의 구조·수색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보니 구난기구의 빈틈만큼이나 그걸 그저 전달한 언론의 빈틈이 엄청나게 컸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만화 <저널리즘> 한국어판의 표지. | 씨앗을뿌리는사람 제공

충분하지 않은 보도로 고통받는 사람들
이쯤 되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당시 만천하에 빈틈이 드러나자 그렇게 뉘우치겠다고 외치던 언론사들이 지금은 빈틈없는 보도를 하고 있을까? 잘하고 있는 언론사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상황을 두고 말하자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단적으로 말해, 세월호 유가족도, 이-팔의 사람들도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보도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언론을 통해 지식을 전달받던 나도 역시 고통받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보도를 보며 한숨을 쉬다가 이스라엘에 다녀온 후로는 이-팔 분쟁 보도도 엉망이었다는 걸 알고 더 큰 한숨을 쉬고 만 거다.

한숨 한 번 크게 쉬고서 만화를 한 편 보자. 제목부터 <저널리즘>이다. <팔레스타인>으로 가장 잘 알려진 만화가 조 사코가 잡지와 신문 등에 실었던 만화 기사들을 모아둔 책인데, 이 안에도 이-팔 상황을 담은 에피소드가 있다. 이 에피소드의 역자 김종원 기자가 후기에서 잘 짚어냈듯 이 책 전체를 통해 만화의 저널리즘으로서의 가능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만화는 방송 뉴스의 시간 제약과 글 기사의 생생함 부족이라는 한계를 모두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만화의 특징만으로 논할 수 없는 조 사코만의 윤리적 섬세함도 중요해 보인다. 이-팔 지역 탐방 기사에서 예를 들어 보자.

“가정집이라도 테러작전 용도로 쓰인다면 우리는 그 집을 파괴할 법적 권한이 있습니다.”

“우리는 막무가내로 집을 부수는 게 아닙니다.”

“그 집은 비어 있었어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철거한 이스라엘 군인의 말을 전달한 바로 다음 컷에서 조 사코는 그 말의 맹점을 확인한다. 현지에서 인터뷰한 팔레스타인인 T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집은 ‘비어’ 있었던 게 맞다. 하지만 그 비어 있음은 이스라엘 군이 총을 쏴대는 통에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림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듯 그의 집은 파괴되었다.

이 장면만 해도 논할 것이 부지기수지만, 요는 이것이다. ‘중립적이고 편파적이지 않은 자세를 유지하되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라.’ 조 사코가 서문에서 밝힌 그의 언론관이다. 그는 권력의 균형이 무너진 곳에서 강자의 발언은 이리저리 샅샅이 검토해 다시 들려주고, 약자의 발언은 역사성을 담아 민낯 그대로 들려준다. 그저 표피인 ‘팩트’가 아니라 그 이면의 진실을 권력의 저울에 달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화로 본 세상

앞서 우리 언론에 대해 한숨 섞인 이야기를 적잖이 했지만, 좋은 언론인들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낸다(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 또한 우리는 안다. 이렇게 ‘깜냥’에 넘치는 글을 쓴 것은 그 말대로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숨만 쉬고 있기엔 나쁜 돈의 빈틈이 너무 크다. 직접 현장에 가서 실상을 알고 보면 그 빈틈은 더 크게 보인다. 조 사코처럼 아주 좋은 돈을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빈틈을 보려면 그 빈틈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먼저 필요하니, 둘 중 하나는 시도해 보길 권할 따름이다.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