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새 시도와 해석 <노래하듯이 햄릿>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수없이 많은 반복과 변형을 통해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계의 영원한 스테디셀러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연출가들이 자기만의 시선과 해석이 담긴 <햄릿>을 시도하고 있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노래하듯이 햄릿> 역시 이 우울한 덴마크 왕자의 비극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햄릿>과 그 출발부터가 조금 다르다.

원작 <햄릿>에는 수많은 음모와 배신 속임수와 갈등이 벌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이질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무덤지기들이 등장해 무덤을 파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해골 하나를 앞에 두고 이들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비극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삶과 죽음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뛰다의 <노래하듯이 햄릿>은 바로 이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미 햄릿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이 죽은 뒤의 무대, 햄릿의 해골과 일기장을 앞에 두고서 4명의 광대들은 ‘노래하듯이’ 햄릿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죽은 햄릿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의식으로서, 그의 일기장을 토대로 그의 삶을 재현하는 연극을 펼치는 것이다. 시작 장면뿐만 아니라 <노래하듯이 햄릿>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콘셉트 역시 모두 이 무덤지기 장면으로부터 나왔다. 4명의 광대들은 원작의 무덤지기들로부터 파생된 캐릭터이고, 이미 죽은 자의 해골을 앞에 두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는 전체 형식 또한 이 장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원작에서도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하며 그토록 진지하게 고민했던 일들, 삶과 죽음의 문제들이 이 무덤 장면에서는 묘하게 무화(無化)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무덤지기 장면에서 보여지는 비극의 진지함과 그것을 가볍게 바라보는 시선, 그 사이의 충돌과 대립은 결국 이 작품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한편 <노래하듯이 햄릿>은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2001년 창단 이후 꾸준히 탐구한 공연양식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속에는 광대, 인형, 노래, 가면 등 ‘뛰다’가 추구해온 공연양식이 모두 들어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양식의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활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기 등장하는 ‘광대’들은 ‘뛰다’가 그동안 모든 작품 속에서 꾸준하게 탐구해온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보비리, 무룡태, 은근짜, 앙짜 등 깜찍한 이름을 가진 이들 4명의 광대들은 이 공연의 화자이자 극중 햄릿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배우이며, 또 햄릿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자기 생각을 늘어놓는 관객이자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가면과 인형을 다루는 조종사이자 노래와 연주를 담당하는 악사의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문화내시경

2001년 창단된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배우의 몸과 소리를 탐구하고 광대 및 오브제 연기를 연구하며,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연극 형식을 실험하고 있는 극단이다. 2010년부터 강원도 화천에 상주하면서, 예술자들의 창작 공간이자 지역문화 예술공간인 ‘시골마을 예술텃밭’을 꾸려나가고 있는 이들은 올해 창단 15주년을 맞이했다.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서울 무대에 오르는 <노래하듯이 햄릿>은 ‘뛰다’의 창단 15주년, 화천 이주 5주년, 그리고 이 작품의 초연 1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공연이다. 15년간 쉼 없이 뛰면서 발전하고 성장한 ‘뛰다’의 어제와 오늘을 바로 이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6월 6일~21일, 국립극단 백성호장민호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