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버드맨>-화려한 재기에 대한 과신 ‘통제의 환상’

“화려하게 복귀하자. 넌 버드맨이야.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야.”

잊혀진 무비스타가 있다. 1992년 그는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최고의 슈퍼히어로였다. 하지만 23년이 지났다. 한때 모든 것을 가졌지만, 이젠 밑바닥 언저리까지 떨어졌다. 그는 재기 무대로 브로드웨이를 선택한다. 각색, 연출, 주연, 제작, 홍보 등을 모두 도맡아 화려하게 복귀를 꿈꾼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이다.

<버드맨>의 주인공은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이다. 그는 꿈과 명성을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한다. 상황은 녹록잖다. 재기에 대한 강박, 자금 압박을 받는 제작자, 제멋대로인 주연배우, 불안해 하는 무명배우, 한창 냉소적인 딸(엠마 스톤) 등 주변은 엉망진창이다. 또 있다. 연극평론가들이다. 이들은 악평을 예고하고 있다. 환청과 환각 속 ‘버드맨’은 톰슨을 유혹한다. 다시 버드맨을 찍자고. 그래서 슈퍼히어로로 다시 돌아오라고.

주연인 마이크가 한 신문과 한 인터뷰를 보며 톰슨은 흥분해 외친다. “내가 한 말을 훔쳐 인터뷰해? 이건 내 연극이야. 공연비도 내가 냈고 홍보도 내가 했다고.” 톰슨은 왜 이렇게 흥분하는 것일까.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떠맡아야 이 연극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심리를 ‘통제의 환상’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인데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로또 번호를 기입할 때 자동번호보다는 내가 적어야 왠지 더 잘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1965년 젠킨스와 워드는 두 개의 스위치를 마련한 방에 실험 참가자를 넣고 전등을 켜도록 했다. 전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더 강하게 스위치를 눌렀다. 더세게 누른다고 전등불이 들어오지 않지만 사람들은 힘주어 스위치를 눌렀다. 미국의 한 학자도 참가자 A, B를 모집한 뒤 피실험자들이 소음에 얼마나 견디는지를 실험했다. 소음이 최고조에 이를 때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붉은 스위치가 A방에는 없고, B방에는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같은 소음을 줬을 때 A가 더 빨리 방에서 튀어나왔다. B는 좀 더 참았다. 사실 두 방 다 붉은 스위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자신이 소음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은 B는 고통을 참는 한계도 더 커졌다.

‘통제의 환상’을 ‘플라시보 버튼(위약 버튼)’이라고도 부른다. 맨해튼 횡단보도 앞에는 신호등을 작동시키는 버튼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버튼을 누른 뒤에는 파란불이 바뀔 때까지 불만 없이 잘 참아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버튼이었다. 대형 빌딩의 사무실에는 종종 가짜 온도조절기가 있다. 온도조절기가 있다고 믿은 사람들은 더위와 추위에 더 잘 견뎠다.

영화 속 경제

경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자신들이 가계부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금융권에 약간의 부실이 나도 금융당국이 사전에 미리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리 믿는다면 ‘통제의 환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2003년 카드채 사건 당시 정부는 “카드채가 전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며 “설혹 카드채가 문제가 되더라도 우리가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꼬리(카드채)는 몸통(은행)을 흔들었다. 정부가 말하는 재정정책도 그런 점에서 완전무결하다고 믿기 어렵다. 시중에 돈이 과도하게 풀리는 것을 막겠다고는 하지만 어느 시점에 화폐가 과잉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금리를 더 내리고, 재정을 풀면 경제가 살 수 있다는데 정말일까. 부작용은 없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