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공포와 의심의 교실, 인간관계 퍼즐

<영광의 교실>이 스토커를 찾는 오리지널 미스터리는 아니다. 영광-영빈-요셉의 관계는 은폐된 공포와 의심을 드러낼 방아쇠일 뿐이다. 영광은 범인이 요셉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그 시절의 또 다른 기억은 온통 잿빛이다. 교실은 밀림이었고, 누군가는 사자였고, 누군가는 초식동물이었다. 먹이사슬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었으니, 매일매일이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을 터이다. <영광의 교실>이라는 제목은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전쟁터를 직유한다. 이 만화의 주인공인 ‘서영광’의 교실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고 밀어내며 얻은 영광의 교실이 된다. 그렇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실은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콜롯세움이다.

20대, 30대, 40대, 50대…. 어떤 특정 세대가 그대로 장르가 된 적은 없다. 하지만 10대는 다르다. 10대가 주인공인 만화는 학원물, 틴에이지와 같은 이름으로 장르의 지분을 획득했다. 그만큼 작품이 많고, 독자도 많았다. 특정 세대를 주인공으로 하여 제작된 만화를 넘어, 그 세대가 장르의 주역이 되었다는 말이다. 10대 장르의 특징은 10대들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만화가 된다는 점이다. 현실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고, 10대들이 이해하는 웃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판타지한 공간에서 10대들을 소환하기도 한다.

안의영 작가의 만화 <영광의 교실>. / 올레마켓웹툰

수상스러운 영광의 교실 사물함
안의영의 <영광의 교실>은 지금 한창 연재 중인 10대 장르 웹툰이다. 중의적 제목처럼 <영광의 교실>의 주인공은 서영광이다. 영광은 한참 나이 많은 누나 서영주와 둘이 산다. 영주의 고등학교 졸업식, 영주와 영광의 부모님은 영광의 유치원 졸업식에 갔다가 늦어져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한참을 기다리던 영주는 전화를 걸어 짜증을 낸다. “서영광만 엄마 아빠 자식이야? 나는 주워 왔어? 지금 친구들은 부모님들이랑 다 밥 먹으러 갔어. 학교에 나 혼자 있어. 나 엄마 아빠 없어. 오지마. 짜증 나니까.” 이 통화가 부모님과 마지막 통화가 된다. 영주는 자신에게서 부모님을 뺏어간 영광이 맘에 들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된 영광의 학교에 들른 영주. 예전 자신의 선생님이었던 영광의 담임선생님은 영주에게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다양한 동물들로 보이고, 영광이 사자로 보인다고 말한다. “아이들과 섞여 있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 위에 군림하고 있더라. 이 교실의 왕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지.” 영광은 부모님을 죽게 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잠재된 트라우마는 영광을 ‘사자’로 만들었다. 영광은 <영광의 교실>을 끌어가는 문제적 인물인 셈이다.

만화는 교실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들을 담은 드라마로 시작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마침내 공포와 의심의 장으로 교실을 묘사한다. 평범한 교실은 누군가에게 공포의 장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의심의 장이 된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문제적 인물 영광이 있다.

영광의 사물함에 몰래 찍은 영광의 사진이 들어 있다. 처음에는 학생은 물론 선생님들에게까지 인기 많은 영광을 좋아하는 아이의 수줍은 고백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진 뒷면에 ‘I will get you’라고 적혀 있다. 이건 수줍은 고백과는 좀 거리가 있다. 아이들은 수군거리고, 영광은 침착해 보인다. 며칠 뒤 영광의 사물함에 이빨이 선물박스에 포장되어 놓여 있다. 무언가 숨기고 싶은 영광의 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의영 작가의 만화 <영광의 교실>. / 올레마켓웹툰

영광의 숨겨진 과거에 대한 단서들
영광의 반에는 혼자 페이스북하면서 지내는, 인기 없는 여학생 고영빈이 있다. 페이스북에서는 고유빈으로 다른 삶을 산다. 통통하고 평범하며 존재감 없는 고영빈이 페이스북 여신 유빈이 된다. 포토샵으로 합성해 올리는 사진에 많은 추종자들이 댓글과 ‘좋아요’를 누른다. 고영빈은 트라우마가 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다 캐비닛에 숨었는데, 아이들은 일부러 영빈을 찾지 않는다. “이제야 우리끼리 놀 수 있겠네. 뚱뚱한 엉덩이로 문을 부술지도 몰라! 얼른 도망가자.” 영빈은 잠긴 문을 열지 못한다. 고등학생 영빈의 처지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혜리는 늘 영빈을 괴롭힌다. 영빈에게 매일매일은 지옥이다. 매일 페이스북으로 탈출해 여신 유빈이 되어 자기를 괴롭히는 혜리를 디스한다. 그런 영빈에게 영광이 호의를 베푼다. 칠판도 함께 닦아주고, 잊고 간 우산도 가져다 준다. 영빈은 페이스북의 또 다른 자아인 유빈의 남자친구로 영광을 선택한다.

숨겨놓은 행복이 오래갈 리 없다. 어느 날, 영빈이 다른 이름으로 페이스북을 하고 같은 반 혜리를 욕해 놓은 게 발각된다. 영빈, 그러니까 페이스북의 유빈이라는 캐릭터가 영광이랑 사귀고 있다고 올린 것도 들통이 나 영광의 스토커로 몰린다.

만화는 영광에게 숨겨진 과거가 있다는 단서를 조금씩 흘려준다. 공포와 의심이 교실 안에서 확장된다. 영광의 스토커는 영빈이 아니다. 영광을 스토킹한 인물은 영빈의 짝인 최요셉으로 문제적 인물 영광이 숨긴, 혹은 숨기고픈 중학 시절의 기억을 불러내려 한다. 드라마는 미스터리로 확장되지만, <영광의 교실>이 스토커를 찾는 오리지널 미스터리는 아니다. 영광-영빈-요셉의 관계는 은폐된 공포와 의심을 드러낼 방아쇠일 뿐이다. 영광은 범인이 요셉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며칠 뒤, 반 아이들에게 스토커로 몰려 왕따를 당하던 영빈은 선생님에게 가서 영광과 혜리가 요셉과 자신을 괴롭힌다고 말한다. 늘 영광을 의지하던 담임선생님은 영광과 혜리를 부른다. 영광은 담임에게 자기가 요셉을 때렸는데 그 이유는 요셉이 자기 사진을 몰래 찍고, 심지어 뺀 이빨을 사물함에 넣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날 이후 요셉은 스토커, 그것도 남자를 좋아하는 변태 스토커가 된다. “지루했던 학교생활이 악몽이 되는 시간은 한 번의 방과후면 충분했다.” 왕따의 과녁은 영빈에게서 요셉으로 이동된다.

만화로 본 세상

여기까지 <영광의 교실>의 흐름은 교실의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왕따 스토리인 듯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적 인물 영광의 본질은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작은 단서들만 보여줄 뿐이다. 독자들은 작가가 보여주는 조각들을 더듬어 퍼즐을 맞추는데, 친절하지는 않다. 우선 이야기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지금까지는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으니까. 앞으로 영광을 중심으로 모든 인간관계의 퍼즐들이 맞춰질 것이다. 감추어진 과거가 공포와 의심을 더욱 크게 할 것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교실이 마주한 공포와 의심을 볼 것이다. 사실 진짜 공포와 의심의 속살은 도대체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달아대는 독자들의 댓글이긴 하지만.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