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사드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에도 막부는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성문 앞에 예수가 새겨진 조각이나 그림을 설치합니다. 그림을 밟는 걸 거부하는 사람은 기독교 신자로 간주해 체포해 처형시켰습니다. 이른바 ‘후미에’입니다.

사드 논란에 휘말려 있는 한국은 후미에를 강요당한 기독교 신자보다 사정이 더 딱합니다. 후미에야 눈 딱 감고 그림을 밟고 지나가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지만 한국은 그럴 수도 없습니다.

미국은 한국에 사드, 즉 고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배치하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중국은 턱밑에 자신들을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망이 들어온다며 결사반대하고 있습니다. 후미에로 비유하면, 미국과 중국이 성조기와 오성기를 그려놓고 반대쪽에서 칼을 들고 서 있는 형국입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기 그림을 밟는 순간 우리 목을 내려칠 기세입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더니 우리가 꼭 그 짝입니다. 경제대국 운운하지만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국제정치에선 약소국일 뿐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국방부와 미국은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은 대부분 정점 고도가 낮은 단거리 미사일로 고고도 요격 시스템인 사드가 꼭 필요한지는 의문이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드가 있다면 북핵 공포에서 벗어나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모든 걸 막는 방패는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사드는 평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햇볕정책을 계속 발전시켜 왔다면 오늘날 사드 갖고 법석을 떨 일도 없었을 텐데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실 사드가 북핵 방어용으로 꼭 필요한지 아닌지가 논란의 핵심은 아닌 듯 싶습니다. 미국이나 중국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느냐가 핵심일 것입니다.

국방부는 중국의 불만에 대해 “주변국이 우리의 국방안보 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습니다. 미국 눈치를 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게 국제정치의 현실이니까요. 문제는 중국 또한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장 사드를 배치할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2013년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은 수출 총액의 약 26.1%를 차지했습니다. 중국과의 갈등이 현실화된다면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는 더 어려워질 게 뻔합니다. 한반도가 한·미·일과 북·중·러 간 신냉전의 격랑으로 빠져들 위험도 있습니다. 중국만이 아니라 러시아도 사드 배치가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사실 미국은 역지사지를 해야 할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은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고 하자 해상봉쇄조치를 취하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핵전쟁까지 불사한 미국의 서슬에 눌려 결국 소련이 물러났습니다. 그랬던 미국이 중국이 반발하는데도 중국의 코앞에 사드를 배치하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 한다고 불륜이 로맨스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군사적으로도 효용성이 의문시되고,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크고, 시대착오적인 냉전의 위험성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득보다 실이 더 커 보입니다. 그런데도 사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이념 또는 사대주의에 입각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한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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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야지로베라는 장난감이 있습니다. 막대 위 끝에 T형으로 가로대를 대고, 그 가로대 양끝에 추를 매단 인형의 일종입니다. 양쪽 추가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막대는 금세 쓰러집니다. 한국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야지로베처럼 쓰러지지 않으려면.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