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의 인물탐구]통합진보당 해산 소수의견 김이수 재판관…이념판결 아닌 ‘위대한 반대자’

지난해 12월 25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집전한 성탄절 미사 강론에서 헌법재판소의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나치 제국에서 유태인들을 집단수용소에 감금하고 처형까지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고 재판관들이 히틀러의 비상조치법에 동의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도 이승만 정권 때부터 정권의 잘못된 정책이나 행동에 법 전문가들이 합법성과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또 “그때 중죄인이었던 이들이 30~40년이 지나 무죄판결을 받고 있으니 거짓은 언젠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면서 “21세기에 들어 과거의 일이 재현되는 것이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통합진보당을 해산한 우리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70년 전 나치독일의 최고 재판관에 비유했다. 참 신랄하면서도 무서운 비유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30~40년 전 군부독재 시대 ‘육법당’(육사와 법률가 출신)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상식이 무시되고 국민의 기본권이 권력에 의해 난자당할 때도 법은 지켜주지 못했다. 법리가 무시되는데도 법률가는 저항하지 못하고 권력의 눈치만 봤다. 오히려 법률가들이 적극적으로 권력의 편에서 불법을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바로 그 시절을 정당화시킨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법률가가 지금 청와대에서 ‘왕실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이다.

김이수 재판관 | 이준헌 기자

군부독재 시절 소수의견은 용기의 표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박주민 변호사는 2014년 최악의 판결로 헌재의 진보당 해산 결정을 꼽았다. 이 결정을 내린 박한철 헌재 소장을 비롯해 이정미·김창종·안창호·이진성·강일원·서기석·조용호 재판관 등 8명의 재판관 이름을 분명히 그리고 명확히 기록에 남겨야 한다.

한편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이름도 중요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의 소수의견이 혼자만 튀는 결정이라서가 아니다. 시국사건에서 법률가에게 소수의견은 곧 양심과 용기의 다른 표현이던 시절이 있었다. 앞서 육법당이 설치던 군부독재 시절이다. 국제사회는 이런 상황을 ‘사법의 암흑시대’라고 평가했다. 이 참담한 시기에 몇몇 법률가는 소수의견을 통해 시대의 양심과 소신을 담았다. 불이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단한 용기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시국사건에서 법률가의 소수의견이 주목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판결에 권력의 개입도 없고, 눈치를 볼 일도, 또 용기도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우일 주교의 지적대로 지금 우리 사회는 법관의 소수의견이 다시금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많은 종교인, 대학 교수, 시민사회단체의 시국선언이 이어지는 시대가 됐다. 과거 시절로 회귀했다는 말들이 나오는 이유다.

그리고 결정적인 소수의견이 나왔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했던 김이수 재판관의 소수의견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헌법학)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이수 재판관의) 소수의견은 1명이 집필했지만, 논리와 소신과 용기에서 빛나는 작품”이라면서 “거듭 읽을 가치가 있다. ‘위대한 반대자’(great dissenter)의 탄생이기도 하다”고 김 재판관을 극찬했다.

이번 재판에서 피신청인 측 변호인으로 참여한 이재화 변호사는 “김 재판관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다수의견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라며 “김 재판관과 같은 분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김 재판관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헌법재판관 중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는 김이수 재판관뿐이고, 나머지 8명의 재판관은 민주주의를 반공주의로 인식하는 수구꼴통들”이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보통 남을 비판하는 데 능한 법률가들이 일선 법관의 판결을 이렇게 극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게다가 재판에 참여한 변호인이 이렇게 법관(재판관)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칭찬하는 경우 역시 매우 드물다. 그만큼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매우 의미가 큰 사건이었던 것이다.

사실 김이수 재판관은 2012년 9월 헌재 재판관에 취임한 이후 여러 차례 의미 있는 소수의견을 냈다. 헌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법적 근거 없이 근거리에서 물대포를 발사한 행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하지만 그는 소수의견으로 위헌 입장에 섰다. 그는 “물대포는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경찰 장비이므로 구체적 사용 근거와 기준을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면서 “아무런 규정 없이 물대포를 사용하는 것은 법률유보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경찰의 적법한 해산절차 없이 물대포를 사용하는 것은 적법절차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김 재판관은 2014년 3월에도 국가공무원법과 정당법상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에 반대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그는 “정당가입 금지 조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공무원의 정당가입 자유를 침해하고 교원·공무원에 대해 평등원칙에 위배돼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2012년 12월 김이수 사법연수원장이 시각장애를 이기고 연수원을 수료하는 최영씨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장애인의 시설접근권 정립 판결 내려
2004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그는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하지 않고 무분별한 건축허가를 남발한 자치단체에 배상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난개발을 조장하는 자치단체에 제동을 건 첫 판결이었다. 또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던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후 혼자 리프트를 타다 추락사한 사건에 대해 원심보다 많은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장애인에게 시설 접근권이란 개념을 정립한 첫 판결로 평가된다.

이밖에 ‘김영희 사건’으로 불리는 한국통신공사 여성 전화교환원 정년차별 사건, 미성년자를 고용한 ‘미아리 텍사스’ 업주에게 실형을 선고한 사건, 불과 3m 음주운전을 했다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택배기사의 운전면허를 취소시킨 경찰청의 처분에 대해 ‘재량권 남용’이라고 판결한 사건 등 그는 여성과 미성년자,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판결을 많이 내렸다. 그의 판결은 국가권력에는 엄격하고, 국민과 약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일관성을 갖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법과 법관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그리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역할이 더욱 제고돼야 한다”고 말했다.(인사청문회 소개서)

김 재판관은 1953년생으로 전북 고창에서 농사일을 하는 부모의 9남매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가정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의 높은 교육열로 아홉 형제·자매 모두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었다”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법관을 꿈꿨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전남 광주로 유학해 “존경하는 은사님과 우정을 쌓았던 친구를 만날 기회를 가졌다”고 회고했다.

1972년 그가 서울대 입학하던 때는 바로 10월 유신이 단행되던 해였다. 그는 법대생으로 탱크와 군인이 국회 정문을 막고, 국회를 해산시키는 헌법 파괴 장면을 목도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3학년 때인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동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연행됐다. 민청학련 사건은 유신체제 저항을 억압하기 위해 초헌법적인 긴급조치로 대학생 180명을 구속한 사건이다.(이 사건 관련자 대부분은 나중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재평가받고, 보상까지 받았다) 김 재판관은 연행돼 64일간 조사를 받았지만 다행히 구속은 면했다. 이때 운명적으로 만난 사람이 부인 정선자씨다. 함께 활동했던 두 사람은 같이 연행돼 조사를 받았지만 정선자씨만 구속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김 재판관 부부는 학생시절 운동권이었던 것이다. 이런 과거를 들어 보수층 일각에서는 ‘운동권 판사’가 이번에도 ‘이념적 판결’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재판관은 권력과 약자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했지만 ‘이념적 판결’은 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그를 “이념적으로 경도된 분이 아니다”라면서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법원장 등 조직도 많이 맡아봐 행정적 리더십도 많이 갖췄다”고 평가한다.

또 이번 8대 1의 결정에서처럼 헌재에서 그 자신만 돌출된 의견을 내는 재판관도 아니다. 그를 옆에서 오래 지켜본 헌재 최혁 비서관은 “직원들과 잘 어울리고, 감정의 높낮이가 별로 없는 합리적인 분”이라며 “따르는 후배 법관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보통의 직원들과 술도 마시고, 또 동료 재판관들과 어울려 골프도 치며,(잘 치지는 못한다고 한다)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는 그렇고 그런 지극히 상식적인 법관일 뿐이다. 조금 특이한 취미를 꼽으라면 ‘마라톤광’이라는 점이다. 부부가 마라톤을 하는데 웬만한 아마추어는 참가조차 할 수 없는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할 정도다. 아마추어 중에서도 프로급쯤 된다고 한다.

2014년 12월 19일 국회로 회부된 헌재 결정문을 국회 직원이 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보안법 존치 주장 등 보수성도 강해
사실 그는 학생운동권 출신 법률가로서 좀 ‘소심한’ 편에 속한다. 그는 2012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5·16이 쿠데타인가, 혁명인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못했다. 교과서에 분명히 5·16은 쿠데타로 명시돼 있는데도 말이다. 김 재판관은 또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 1호, 4호, 9호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면 유신헌법 또한 위헌 아니냐”는 질문에 즉답을 못하다 “군사력에 의해 권력을 잡은 측면을 감안하면 그렇지만 공과의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얼버무렸다.

본인은 물론 아내까지 긴급조치 4호로 고통을 받은 당사자이면서도 시국문제에 확고한 신념을 표현하지 못한 ‘유약한’ 심성을 드러낸 것이다. 심지어 그는 “국가 안전보장,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등 헌법을 수호하는 데 필요한 내용은 존치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보안법 존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보수당인 열린우리당조차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삼았던 것에 비추어 상당히 보수적이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염원했던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가 지금까지 판사생활을 하는 동안 줄곧 큰 기둥이자 버팀목이 돼왔다”고 고백했다. 그의 고백에서 보듯이 그는 진보 성향을 조금 가진 체제수호자 정도이지, 변화를 꿈꾸는 진보적 이념가는 아니다.

그는 후배 법관에게 업무수행 자세로 논어에 나오는 유구사(有九思), 즉 군자가 깊이 생각해야 할 아홉 가지를 추천한다. 그것은 사물을 볼 때에는 밝고 정확하게 보는 시사명(視思明), 일 처리에는 경건한 사사경(事思敬), 들을 때는 총명한 청사총(聽思聰), 용모는 온화한 색사온(色思溫), 태도는 공손한 모사공(貌事恭), 말은 충실한 언사충(言思忠), 의심이 나면 묻는 의사문(疑思問), 화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는 분사난(忿思難), 이득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는 견득사의(見得思義)가 그것이다. 그는 이 중 시사명과 사사경이 법관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번 소수의견을 쓰기 위해 토·일요일은 물론, 밤 늦게까지 심지어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야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의 지론대로 통합진보당 사태를 정확하게 보기 위해, 경건한 일처리를 위해 밤을 지샜던 것이다.

김이수 재판관이 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분명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바로 우리가 오랜 세월 피땀 흘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것이고, 또한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대한 의연한 신뢰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며, 헌법정신의 본질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 간단하면서 분명한 결론을 ‘위대한 반대’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