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욱 교수의 ‘탈핵을 꿈꾸며’](9) 주민들의 불안이 피해의식이라고?

핵마피아는 핵발전소의 사고·고장 및 은폐 등이 가져온 신뢰 상실에 대한 책임은 전혀 언급조차 않은 채 오히려 시민들이 자기들을 신뢰하지 않는 점을 문제로 삼는다.

지난 10월 한빛핵발전소본부가 일반 시민에게 발전소의 배수로를 낚시터로 개방했다. 고용창출과 소득증대를 가져온다는 지역대표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차원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홍보하려는 의도인 것 같으나, 지난 1월 5호기에서 발생한 하청종업원 2명의 사망사고에 대한 민심무마용 성격이 더 짙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고리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부산 기장군의 해수 담수화시설 가동이 연기되는 일도 있었다. 부근 해역의 바닷물에서 방사성물질 특히 삼중수소가 검출되면서 주민들이 담수화시설 가동을 격렬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과 한살림경남 등 경남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12월 17일 오후 방재복과 마스크를 쓰고 창원시 의창구 정우상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고리스톱’(goristop)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고리 원전 1호기 폐쇄를 촉구했다. | 김정훈 기자

핵발전소 온배수의 방사성물질에 대한 논란처럼,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둘러싼 시민들의 불안에 대해 핵마피아는 자기들의 과학적인(?) 안전주장을 믿지 않는 시민들을 감정적인 피해의식 또는 불안의 탓으로 몰아붙인다. 시민들이 왜 불안해 하는지 원인에 대한 분석보다는 불안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핵마피아의 상투적인 궤변들을 몇 가지 검증해 보자.

먼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는 핵마피아의 주장처럼 과연 안전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온배수에는 여러 종류의 방사성 핵종이 들어 있다. 이 물질들이 물고기에 축적돼 인체 내에 흡수되면 방사능사고에 버금가는 피해를 줄 수 있다. 전기출력 100만kW급 핵발전소 1기는 바닷물보다 약 7도 높은 온도의 온배수를 초당 약 60t씩 24시간 방출하고 있다. 핵발전소의 경우 터빈을 돌린 후의 수증기를 식히는 복수(復水)기에 냉각재인 바닷물을 공급하는 취수구는 해초와 조개 등의 서식을 막기 위해 제초·살충제로 쓰이는 대량의 염소를 사용하고 있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 안전한가
핵발전소의 액체 폐기물을 보면 ▲원자로 내의 1차 냉각재 또는 복수 등을 취급하는 펌프와 밸브에서 늘 나오는 소량의 물 ▲1차 냉각재에 포함된 붕산의 농도와 pH 등의 수질조절을 위한 검사용의 물 ▲원자로 내의 검사·보수공사 후의 기기를 세척한 폐액 등이 있다. 이런 액체 폐기물은 여과·탈염(脫鹽)·증발·농축 등 처리 후에 재사용하거나 방사능 농도의 저하를 확인한 후에 방출한다.

즉 온배수의 배수로 근처에서 플랑크톤의 증식에 따른 개체수 증가와 어종의 변화가 일어나지만 결코 방사성물질과 화학물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빛핵발전소의 경우 핵발전소 부지에 붙어 있는 취수구와 단지 방향만 달랐던 배수구의 온배수가 격심한 간만의 차 때문에 외해(外海)로 확산되지 못한 탓으로 연안 어업의 결정적인 황폐화를 가져왔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서 신고리핵발전소 3·4호기의 경우 취수구가 핵발전소 부지로부터 775m, 배수구가 435m 각각 떨어진 곳으로 수면에서 45~48m를 유지하고 있다. 덧붙이면 배수구는 빠른 확산을 위해 취수구보다 가깝고, 낮은 온도의 냉각수를 위해 취수구가 배수구보다 더 깊다.

두 번째 궤변으로는 후쿠시마 사고는 오염 때문에 비록 많은 주민이 피난하고 있지만, 방사능으로 사망한 이가 없을 정도로 핵발전소는 자동차보다도 안전하다는 핵마피아의 상투적인 주장을 들 수 있다. 이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적어도 자동차 교통사고와 비교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회적 합리성을 반영해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자동차 사고와는 달리 핵발전소 사고는 일방적인 피해라는 점 ▲핵발전소 사고의 경우 피해자 즉 주민에게는 사전적인 피해 방지 수단이 없으며, 또 피해 발생 예측도 불가능한 점 ▲피해의 시간적·공간적 범위의 차이 ▲자동차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운송수단이 없는 반면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재생에너지 등의 발전원으로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핵마피아는 핵발전소 사고를 비교 전제가 완전히 다른 교통사고에 억지로 꿰맞추는 말장난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신뢰의 기반조차 흔들고 있다.

게다가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 지난 3월 말 현재 쓰나미·지진 등에 의한 직접적인 사망자(행방불명자 제외)를 보면 미야기 현 9537명, 이와테 현 4637명, 후쿠시마 현이 1607명이었다. 한편 피난생활 중의 환경변화에 따른 건강악화와 자살 등으로 인한 간접적인 사망자는 미야기 현이 889명, 이와테 현이 441명이고 후쿠시마 현이 1704명으로 피해 3개 현 중 가장 많았다. 후쿠시마 현 자살자도 2011년 10명에서 2013년 23명으로 증가했다.

핵발전소가 자동차보다 안전하다?
또 다른 궤변으로서 국내의 핵마피아가 후쿠시마 사고를 중대사고(!)라고 부르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들이 사고 전까지 사용해 온 핵발전소의 안전평가는 통상 중대사고와 가상사고의 둘로 나뉜다. 전자는 격납 용기가 건전한 상태에서 기술적 관점에서 판단해 최악의 경우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고이다. 후자는 전자를 훨씬 넘는 상정외(想定外) 사고를 가리킨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는 이 둘의 개념을 넘어선 것인데도 불구하고 국내 핵마피아는 제대로 검증조차 없이 가장 작은 규모의 중대사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후쿠시마 사고는 ‘심각한 사고’(Severe Accident)로서 중대(Major)사고 또는 가상(Hypothetical)사고로는 규정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당사자인 일본조차 기존의 중대·가상사고가 아니라 가혹(苛酷)사고로 부른다. 국내 핵마피아가 중대한 사고라는 식의 형용사적 용법이 아니라 굳이 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의도적인 왜소화 또는 궤변으로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처럼 핵마피아는 핵발전소의 사고·고장 및 은폐 등이 가져온 신뢰 상실에 대한 책임은 전혀 언급조차 않은 채 오히려 시민들이 자기들을 신뢰하지 않는 점을 문제로 삼는다. 특히 권위주의를 앞세운 핵마피아의 대학교수와 연구자는 지식을 과대 포장한 전문성을 강조하면서도 지식의 정당성에 대한 증명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상투적으로 내세우는 과학적 지견(知見)도 어디까지나 현실적 유효성이 높은 가설에 불과하다. 게다가 늘 비판적인 검토 대상이라는 점을 감춘 채 시민들에게는 마치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게다가 핵마피아는 핵발전소에 대해 과학적 지견에 바탕을 둔 안전을 강조하면서 시민들의 우려를 감정적인 불안의 문제로 단정하고 무시한다.

심지어 시민들은 냉정한 판단을 못하는 만큼 정부·어용전문가가 적절한(?) 조언을 해야 한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핵마피아가 안전과 불안의 2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오랜 삶의 지혜에서 나오는 리스크의 파괴성·예측가능성·억제가능성·세대 간 공평성 같은 평가요소(要素)의 판단을 단순히 감정 또는 심리의 문제로 한정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불확실성이 높은 확률론을 바탕으로 한 안전, 즉 과학(?)만이 리스크 평가의 유일한 주체처럼 보이려는 프로파간다의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장정욱 교수의 ‘탈핵을 꿈꾸며’

그러나 이런 리스크의 평가요소는 과학적인 리스크 평가에서도 불가결하며, 오히려 좁은 분야의 전문가(기술자)만으로는 제대로 평가조차 곤란하다. 기본적인 전제조차 왜곡한 과학적 사실(?)을 내세워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핵마피아는 언제까지 궤변을 늘어놓을 것인가? 리스크 평가에 대한 이견(異見)이 있다면 공공적 토의를 통한 합의 형성으로 시민의 안심을 획득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자세가 아닌가?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