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다시 내한한 <노트르담 드 파리>

암표상이 입장권은 구했느냐며 어깨 너머로 말을 건넸다. 공연장을 나와 조금 걸어가면 DVD를 복제해 판매하는 불법 노점상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컬러 프린터로 뽑은 듯한 표지는 한눈으로는 진위를 가려보기 힘들 만큼 그럴싸해 보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초연됐던 2005년 세종문화회관 주변의 풍경이다.

바로 그 뮤지컬이 다시 내한한다. 솔직히 반갑다. 그동안 우리말 공연이 여러 차례 막을 올렸고, 뜬금없이 영어 버전의 번안 공연이 ‘오리지널’이라는 타이틀로 막을 올린 적도 있었다. 공연가에서 오리지널이란 초연 배우들의 무대를 말하는데도, 국내에서는 외국어로 하는 공연에는 무조건 이 말을 사용하는 등 일종의 과장 마케팅이 빈번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번처럼 프랑스어권 배우들이 꾸미는 투어 뮤지컬에서 만나는 ‘날것’ 그대로의 재미는 번역·번안 공연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공연 중 한 장면. | 경향신문 자료사진

알다시피 원작은 빅토르 위고가 1831년 발표했던 소설이다. 맨발로 춤을 추는 아름다운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를 중심으로 그녀와 사랑을 하기 어려운 세 남자들-곱추 콰지모도, 천주교 사제인 프롤로, 그리고 이미 약혼한 정인이 있는 근위대장 페뷔스-의 사랑 이야기가 근간이다. 원작에서는 비극적인 이야기 끝에 뼈만 남게 된 에스메랄다와 콰지모도의 사연이 아스라이 등장하지만, 무대에서는 구체적인 장면과 노래에 담겨져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는 멜로적인 요소로 구현돼 더 사랑을 받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빅토르 위고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은 여럿이 무대화되며 글로벌한 흥행을 누리고 있다. 프랑스어권을 위시로 한 <노트르담 드 파리>와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레 미제라블>은 그 중에서도 단연 군계일학이다. 일각에서는 단순히 프랑스 뮤지컬로 부르면 안 된다는 주장도 한다. 지구상에 프랑스어를 쓰는 나라가 프랑스만이 아닌 까닭에, 이 작품에는 프랑스인은 아니지만 불어권 국가의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설명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공연 중 한 장면.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물론 잘 알려진 소설이 원작이지만 사실 작품의 해석은 현대사회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세기말의 혼돈 속에서 파리 내 거주권을 달라고 목 놓아 노래하는 극중의 집시들에겐 오늘날 프랑스의 차별적인 이민정책과 보수정치권의 민족주의적 행태에 대한 예술가들의 저항의 의미가 투영돼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예술가들은 감성적이거나 합리주의적인 성향을 띠는 경향이 많고, 그래서 이 작품은 진보성향 문화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해석도 등장한 적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작품을 곱씹어보면 현대 유럽 사회의 갈등과 반목의 정치·사회적 시각을 절묘히 풍자하고 있는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도 있다.

수년 전 우리나라를 찾아 큰 인기를 누렸던 반가운 얼굴들도 다시 만날 수 있다. 특히 콰지모도 역의 맷 로랑이나 시인 그랭그와르 역의 리샤르 샤레스트는 고정적인 한국팬들이 한둘이 아닐 만큼 큰 인기를 끌던 배우들이다.

문화내시경

무엇보다 큰 매력은 음악이다. 서너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뮤지컬 넘버들은 이 작품 최고의 무기이자 장점이다. 공연을 보러 갈 예정이라면 음반 먼저 사서 듣고 가라는 조언을 하고 싶을 정도다. 이번에는 얼마나 큰 신드롬을 일으킬지 흥미롭게 개막을 기다려본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