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안전? 별들에게 물어봐

초대 국민안전처장에 4성 장군 출신의 박인용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이 내정되면서 정부의 장관급 인사에 군 출신 인사가 한 명 더 늘어났습니다. 차관 역시 3성 장군 출신입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오더군요. “이런, 유신시대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느낌인 걸.” 그리고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일사불란’.

오랫동안 안전 분야를 연구하고 현장 경험을 통해 전문적 역량을 키운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간전문가 대신 4성 장군 출신을 택했습니다. 안전에 대한 전문적 경험이나 훈련, 역량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대신 눈에 띄는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상명하복에 익숙하다는 사실입니다. 일사불란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자, 박 대통령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짐작이 되십니까. ‘북두칠성’을 통해 철저한 상명하복의 조직을 만들어 군소리가 나지 않는 안전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구상입니다. 정윤수 문화평론가는 “상명하복의 강력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카리스마적 통치 의지가 엿보인다”고 분석하더군요.

군 출신 인사들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물론 군 출신 인사는 안전 책임자로 무조건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참여정부 때 NSC 위기관리센터장을 맡았던 유희인씨도 공군 장성 출신입니다. 그는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떤 군 인사들은 문제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 군 출신 인사들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수십년간 일하고 사고하며 내면화된 방식 때문에. 국민의 안전은 작전이나 명령으로 담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병사들의 목숨을 희생시켜서라도 전투에 이겨야 하는 게 ‘장군’들의 일이라면, 병사들의 목숨 그 자체를 지켜야 하는 게 ‘안전’입니다. 이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소방이나 재해, 재난 등 국민안전처의 업무들은 대부분 지방정부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설득하고, 타협하고, 조정해서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수평적인 업무 수행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자체만이 아닙니다. 기업, 시민사회와도 각각의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유기적인 협조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군 출신 인사들은 상명하복이라는 수직적인 지휘라인에 익숙했던 인물들입니다. 수평과 수직, 뭔가 어긋나는 조합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지나친 보수 편향으로 사사건건 시민사회와 충돌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박승춘 보훈처장을 보십시오.

인사 논란을 떠나 국민안전처 자체가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찾아낸 올바른 답인지도 의문입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대응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도 해경이 사고 초기 제대로 구조활동을 펴지 못하는 등 각 분야의 일선 현장에서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손과 발을 강화시켜야 하는데 국민안전처는 컨트롤타워, 곧 머리만 강화시킨 인상이 강합니다.

국민안전처는 재해와 재난, 소방, 해경, 민방위 등 그동안 분산돼 있던 기능들을 하나로 모아 강화시킨 조직입니다. 이런 중앙집중화는 지방화, 분권화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전영평 초빙교수가 “국민안전처 신설은 병의 원인이 아닌 증세만 치료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전담기구가 만들어졌는데도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잘못 이해해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건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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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용 처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국민안전처에 쏠리는 이런 찜찜함을 조금이라도 씻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아니면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그냥 잘해주기만을 기원할 수밖에. 그도 아니면 ‘폭풍이 계속 휘몰아치라’고 노래하거나.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