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인권을 유린당한 억울한 사람들

다시, 사람이다
고상만 지음·책담·1만5000원

1995년 3월 길거리에서 카세트테이프 노점상을 하던 장애인 최정환씨가 강남구청 앞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버려진 고아였다. 나이가 차 고아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다리가 절단됐고 척수장애를 입은 1급 장애인이 됐다. 지독한 저주였지만 그의 지인들은 그가 이웃을 도운 착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했다. 언젠가 이웃 노점상이 몸이 아파 장사를 못했다는 말을 듣고 최씨는 그날 번 수익을 그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런 최씨에게 더 큰 비극이 다가왔다. 강남구청이 노점상을 강제 철거하기 위해 철거용역을 동원한 것이다. 노점상들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리어카와 물건들이 부서졌다.

용역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최씨의 몸에서 유일하게 성한 곳이었던 왼쪽 다리뼈마저 부러졌다. 최씨는 형사고소를 하겠다고 했고 구청은 노점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회유를 했다. 구청의 약속을 믿고 동료들의 생계를 위해서 최씨는 고소를 포기했다. 하지만 사고 후 9개월 만에 몸을 추스른 후 처음으로 카세트테이프 노점을 연 그날, 구청은 약속을 깼다. 분노한 최씨는 그날 밤 강남구청을 찾아갔지만 이내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그는 구청 현관문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최씨의 분신 이후, 그의 죽음과 험난한 장례를 끝까지 지켜봤던 인권운동가인 지은이는 그가 눈을 감기 전 마지막 약속을 했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꼭 남기겠다고. 그는 임종을 앞둔 최씨에게 “지금 밖에서 선생님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전했지만 사실 이 말은 거짓말이었다. 세상은 최씨의 사연을 거의 알지 못했고 아무런 관심도 분노도 없었다. 지은이는 그의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억울한 사연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고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고, 그러한 다짐은 그의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최씨처럼 인권을 유린당한 현장에서 억울하게 스러진 사람들, 그리고 그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인권운동가이자 과거사 조사관인 지은이가 남긴 기록은 한국 사회에서 ‘사람’으로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권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은이는 20년 전에 있었던 최씨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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