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민의 문화의 발견]이번 책 제목은 뭘로 할까?

‘모름지기 제목이란 원고의 내용을 오롯이 담고 있어야 한다’는 대의에 충실해야 하고 ‘독자의 눈길을 끄는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독자일 때는 몰랐다가 출판계에 들어와 일하면서 귀동냥한 말 가운데 재미난 것이 있다. Timing, Target, Title.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되어야 비로소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진다는 이른바 ‘3T의 법칙’이다.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세 가지뿐일 리는 없고, 최근 몇 년간의 베스트셀러 중에는 ‘어휴 저런 얄팍한 수법으로 순위에 올랐다니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창피하구나’ 싶은 책도 다수 있긴 하다만, 책을 만드는 이들이 타이밍, 타깃, 타이틀을 신경 쓰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구멍가게 수준의 조그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나는 베스트셀러 따위에 관심도 없(다기보다는 엄두가 안 나니까 관심을 끊은 지 오래)고, 한 분야의 책만 주야장천 만들기 때문에 다른 건 그다지 고려사항이 아니지만 타이틀, 즉 제목만큼은 오래 숙고하는 편이다. 이 글을 마주할 독자 중에는 아마 ‘당신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일별해 봤지만 대부분 후지던데’라고 여길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감각이 후져서이지 제목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칼의 노래> 원제는 ‘광화문 그 사내’
그저 독자일 때만 해도 제목이 별로인 책을 보면, 왜 제목을 저렇게 붙였을까 궁금해하곤 했다. 더 근사한 제목이었다면 잘 팔릴 수도 있었을 텐데, 애초에 작가가 그럴싸하게 짓지 못했다면 담당 편집자라도 나서서 바꿔야지. 하지만 편집자로서 경력이 조금 쌓이고 나니 알겠더라, 그게 반드시 쉽지만은 않다는 걸. 일단 작가가 붙인 제목을 건드리는 게 어렵다. 원작의 훼손 운운하는 얘기를 들을까봐 겁도 난다. 제목을 바꿔서 잘 되면 좋겠지만 그렇다는 보장도 없다. 원래 제목 그대로 두면 최소한 욕은 안 먹는다. 찾아보면 이유야 많다. 언젠가 <칼의 노래>를 만든 출판사의 편집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칼의 노래>는, 처음 원고를 받아든 편집장이 김훈 선생을 어렵사리 설득하여 제목을 바꾼 거라고 한다. 선생의 차기작이 <현의 노래>였으니 작가 스스로도 바뀐 제목에 만족했다는 얘기이리라. <칼의 노래>의 원래 제목은 ‘광화문 그 사내’였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모험소설 <보물섬>도 작가가 정한 제목은 ‘선상의 요리사’였지만 담당 편집자의 강력한 권유로 출간 직전에 바뀌어 호평을 받은 케이스다. ‘칼의 노래(보물섬)’는 ‘광화문 그 사내(선상의 요리사)’보다 좋은 제목인가. 두 권 다 명저의 반열에 올랐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이다.

모 사회과학 출판사에 다닐 때의 일이 떠오른다. 제목을 정하는 문제로 저자와 편집자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고생한 적이 있다. 당시 저자는 모름지기 제목이란 원고의 내용을 오롯이 담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내용보다 어감이 좋아 독자들이 부르기 용이하고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저자, 사장, 편집자, 마케터까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모두의 입장이 절충된, 상당히 어중간한 제목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한 출판사의 편집실 내부와 편집자들 | 레이디경향

지금 돌이켜봐도 저자의 주장은 옳다. 저자는 원고로 말하는 사람이다, 제목도 당연히 원고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눈속임은 안 된다, 라는 것은 저자로서 올바른 자세다. 하지만 독자들이 부르기 쉽도록 한다거나 제목이 주는 인상 자체를 고려하겠다는 편집자의 주장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원고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편집자는 책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제아무리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제목이라 하더라도 부르기 어렵고 어감이 나빠서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없으면 곤란하지 않을까.

<조스>는 인쇄 20분 전에 가까스로 결정
물론 이 두 가지 요건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져 탄생한 제목으로 저자와 편집자, 독자까지 삼위일체된다면 다행이겠으나, 무슨 엿장수도 아닌 마당에 세상일이란 게 그리 녹록지가 않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나는 거의 매일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세상에 왜 작명소가 존재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런 와중에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이름)이라는 게, 처음 지을 때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 보니 ‘거참 잘 지었네’, ‘탁월한 선택이었잖아’ 같은 말을 듣게 되는 일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제목은 뭐로 하지>라는 책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인용해 본다.

“피터 벤칠리는 이렇게 기억한다. <조스>라는 제목은 나와 편집자가 마지막 순간에, 책이 인쇄에 들어가기 20분쯤 전에 필사적으로 도출한 타협안이었다. 그때까지 100개쯤 되는 제목을 가지고 만지작거렸을 것이다. ‘백상아리’, ‘상어’, ‘바다괴물의 출현’, ‘죽음의 아가리’ 같은 제목에다 프랑수아즈 사강을 모방한 ‘바닷속 침묵’ 따위까지. 아버지도 ‘내 발을 뜯어먹는 게 뭐지’ 같은 그럴싸한 제목을 몇 개 제안했지만, 결국 편집자와 나는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는 데 동의했다. 사실 온갖 방식으로 조합된 제목 후보들 속에서 우리가 좋아했던 유일한 ‘단어’는 아가리 즉 ‘조스’였다. 결국 내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빌어먹을, 그만하고 조스로 해버리지요.” 그러자 편집자도 말했다. “그렇게 갑시다, 젠장.” 아버지는 그 제목을 싫어하셨고, 내 에이전트도 싫어했으며,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이런 생각이었다. ‘알 게 뭐야, 신인 작가의 첫 소설을 누가 읽는다고.’

김홍민의 문화의 발견

여기서의 ‘빌어먹을’과 ‘젠장’은 직접 제목을 정해본 경험이 없는 분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매우 미묘한 감흥이다. ‘모름지기 제목이란 원고의 내용을 오롯이 담고 있어야 한다’는 대의에도 동의하고 ‘독자의 눈길을 끄는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며, 한발 더 나아가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문장을 분해해 그 순서를 바꿔 다시 조합함으로써 생각지도 않던 새로운 이미지가 생긴다(<장미의 이름>을 제목으로 정한 움베르토 에코의 코멘트)’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거든,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떡하란 말이냐…와 같은 복잡한 생각들이 손으로 만든 매운 짬뽕처럼 어우러져, 마침내 이처럼 저자의 “빌어먹을”과 편집자의 “젠장”으로 집약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곤 하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원고를 보낼 때 제목을 지어서 보낸 적이 거의 없다. 당연히 제목을 정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래서 담당 기자나 편집자가 원고를 읽고 난 후에 제목을 붙여준다. 대개는 6대 4 정도로 만족하는 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원고를 쓰면서도 과연 이번에는 어떤 제목을 붙여줄지 궁금한 것이다.

<북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