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관음증 사회의 강박증 남자

영화사 ‘일취월장’

제목 플랜맨

감독 성시흡

출연 정재영, 한지민

상영시간 115분

등급 미정

개봉 2014년 1월 9일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일상을 결정하는 것은 알람이다. 오전 6시 기상. 오후 10시15분 취침. 이 정도면 봐줄 만하다. 그런데 8시30분에 대문 나서기, 8시42분에 횡단보도 건너기…. 이건 강박증이다. 그런 그가 사랑에 빠졌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비슷하게 정리벽이 있는 여자다.

그 여자라면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어찌해 사랑고백을 했는데, 그 여자는 자신의 그런 강박증을 저주하고 있다. 그녀 대신 클럽을 전전하며,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을 당한 여성과 엮이게 된다.

영화 <플랜맨>의 제목에는 ‘1분 1초 나노 계획 남’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뻔히 예상되는 서사다. 어느 날 그의 가슴에 들어오게 되는 여인 덕분에 그 계획은 무너진다. 공산품처럼 장르적 규칙만 충실히 해내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는 소재다.

영화는 현실세계로부터 두 가지 소재를 차용했다. 하나는 서바이벌 음악프로그램. ‘탑밴드’나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영화에서 언급하는 ‘악마의 편집’이 어느 프로그램이 들었던 뒷담화인지는 해당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작은 클럽을 전전하는 유소정은 그저 털털하고 상처받지 않는 쿨한 성격으로 보이지만, 실은 유명 작곡가 강병수로부터 버림받은 사연을 안고 있다.

그녀의 계획은 자신을 버린 강병수가 메인 멘토 역할을 하는 그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의 못된 짓을 직설적으로 까발린 노래 ‘유부남’을 그의 눈앞에서 불러 복수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천재소년 이야기다. 이야기의 설정 상으로는 1980년대 초로 되어 있지만 많은 부분은 1960년대 세계를 놀라게 했던 김웅용씨 스토리에서 따왔다. 그런데 조금은 피상적이다. 그냥 사람들에게 알려진 정도, 내지는 소문에 기초한 것이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영화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는 것? 가슴에 감춰둔 아픈 사연을 드러내는 ‘용기’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은 한 단계 성장한다는 것이 영화의 주제? 그렇게 결론 짓는다면 너무 상투적이다.

역설적으로 영화가 천착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관음증(voyeurism)이 만연한 사회다. 이를테면 ‘악마의 편집’ 소리를 듣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카메라는 무대에 서기 전의 출연자 모습에 집요하게 포커스를 맞춘다. 이기적으로 자기만 챙기는 출연자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멘토들은 그런 이들에게 ‘철퇴’를 내린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 특별한 사연이 있는 출연자가 천상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영화 중간, 주인공 남녀가 한정석의 아파트 베란다 창문에 서서 건너편 아파트 창에 비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관찰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의도적 배치다. 영화는 한정석이 그런 강박증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계속 암시만 흘리는데, 병원의 발표회장에서 한정석은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털어놓으면서 그 발표회장의 ‘주인공’이 된다.

말하자면 ‘1등’의 무대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병원 발표회장으로 치환된 것이다. 강박증에 사로잡힌 한정석을 연기한 정재영이나 여성로커 한지민의 연기는 무난했다. 하지만 워낙 쌓아온 캐릭터가 있어서 ‘의외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터치스크린

이 작품은 성시흡 감독의 데뷔작이다.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테지만, 아예 무명의 신인에게 맡기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