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할 방법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목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원제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원작 제임스 서버 단편소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감독 벤 스틸러

주연 벤 스틸러, 크리스틴 위그, 숀 펜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4분

개봉 2014년 1월 1일 예정

보통 몽상가라고 번역되는 단어가 있다. Daydreamer.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 미티는 몽상가다. 조금 심하다. 어떤 계기만 있으면 그는 다른 세상으로 날아간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안 그의 일상은 정지된다. 주변 동료들은 그의 그런 성격을 알고 있다. 그는 언론사에 근무한다.

자료실 네거티브 필름 담당자다. 필름을 현상하고, 슬라이드를 만드는 ‘직업’은 디지털 시대에 맞춰 사라질 운명이다. 그가 일하는 언론사 자료실 곳곳도 이미 그 ‘구조조정’으로 인해 듬성듬성 자리가 비어 있다. 회사 내에는 그들이 만드는 잡지가 곧 폐간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소문은 사실이 되었다. 월터는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일을 고집하는 유명 사진작가로부터 폐간호의 표지에 사용될 사진을 넘겨받는다. 그런데 작가가 “꼭 표지로 사용해 달라”고 부탁한 25번 사진이 사라졌다. 25번 사진을 찾기 위한 월터의 여정이 시작된다.

월터가 일하는 잡지는 타임지가 발행하는 ‘라이프’지다. 아마 이쪽 세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로버트 카파나 매그넘과 함께 전성기를 누렸던 그 라이프지. 196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리고 70년대 정도에 폐간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본 후 자료를 찾아보니 ‘라이프’ 제호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1972년 12월 29일에 주간 라이프지는 종간호를 냈고, 지난 2000년도까지 월간으로 발행되었다. 2004년부터는 신문 부록으로 발행되었다. 그마저 2007년에 종간되었고, 2009년 3월부터 온라인으로 재발행되었지만, 2012년 그러니까 작년 1월 이마저 중단되었다.

영화의 원작은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실린 제임스 서버의 단편이다. 단편이 발표된 것은 1939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라, 원작소설 속 월터가 상상한 것은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는 해군잠수함 조종사, 비밀 자살폭탄 임무를 수행하는 영국 공군조종사, 외과의사 따위다. 시대적 상황이 다르니 원작소설과는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 이 소설은 1947년에 한 차례 영화화된 적이 있는데, <펄프>지 편집기자 월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그 영화에서도 일부 요소를 차용해 왔다.

월터 미티의 ‘상상’이라고 하지만, 상상과 현실의 경계는 후반부로 갈수록 애매하다. 그린란드에 갔다가 아이슬란드로, 다시 네팔의 고원으로 사진작가 숀 오코넬을 찾아 떠나는 월터 미티의 놀라운 여정은 해석하기에 따라 몽상으로 볼 수도 있다. 셜리 맥클레인이 연기한 월터의 엄마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마다 월터를 구해내는데, 이 역시 해고위기를 겪는 월터가 ‘정신적 퇴행’을 겪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이라고 말하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를 인용하는 것이나, 영화 <매트릭스>(1998)의 유명한 ‘빨간약 또는 파란약’ 장면을 패러디하는 것도 ‘현실과 몽상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영화가 담고 있는 아일랜드나 네팔의 풍광은 너무나 아름답다.

하지만 잡지 종사자로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착잡하다. 영화 속 월터가 다니는 <라이프지>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우리는 최근 비슷한 사례를 알고 있다. 뉴스위크지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월터가 추적했던 ‘25번 사진’이 어떤 사진인지를 제시하는데, 그건 기자가 언론사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 한국의 언론사 사무실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풍경이다.

터치스크린

얼핏 보기엔 영화는 다시 못올 과거 ‘황금시절’에 대한 애잔한 회고에 머무르는 것같지만, 그 추억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1월 1일 개봉하지만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개봉할 예정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