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인정’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은 다르다

㈜엣나인필름

제목 로렌스 애니웨이

영제 Laurence Anyways

제작연도 2012년

감독 자비에 돌란

출연 멜비 푸포_로렌스 아리아, 쉬잔느 클레먼트_프레드 비레어

등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68분

개봉 2013년 12월 19일 예정

로렌스는 교사다.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틈틈히 소설 작업도 한다. 꽤 촉망받는 작가다. 그에게는 프레드라는 연인이 있다. 둘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사이다.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한 로렌스를 위해 프레드는 파티를 준비한다. 프레드는 로렌스를 기쁘게 만들고 싶다. 그런데 정작 로렌스는 하루종일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한참을 망설이던 로렌스가 프레드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로렌스는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지금까지 삼십년 동안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솔직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프레드는 충격을 받는다. 로렌스는 여장을 하기 시작하고 프레드는 신경 쇄약에 시달린다. 프레드는 로렌스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로렌스는 프레드에게 이해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찌됐든,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자비에 돌란은 매력있는 감독이다. 이 89년생 젊은 감독은 (나이에 비해 유머가 부족한 것 같기는 하지만) 관객에게 특정한 감정을 전달하고자 할 때 그것을 최대한 고취시킬 줄 아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보는 이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영화적 재료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웨스 앤더슨과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고, 판타지를 활용하는 호흡이 묘하게 세련되었다. 키치한 것과 촌스러운 것을 동물적으로 구별할 줄 아는데 정작 그 자신은 키치한 것을 좋아하지 않을 때 나올 법한, 꽤 아이러니한 미감이다.

그의 세번째 장편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는 ‘여자가 된 내 남자친구’라는, 아마도 할리우드 소동극에 더 어룰릴법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로렌스와 프레드가 끝내 서로를 참아내지 못하고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12년의 풍경을 담아낸다. 소재의 특수성에 갇혀 등장인물들이 서로 힘들어만 하다가 마는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로렌스 애니웨이>의 정수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유로부터 발견된다. 그것은 매우 특이한 상황에서나 성립하는 특별한 종류의 고민이 아니다. 대개의 연애가 파장에 이르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다.

로렌스는 본 모습을 찾고 싶어한다. 그는 여자로 살고 싶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고통을 겪는 프레드를 이기적인 여자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녀가 당황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금새 로렌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응원해주는 프레드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프레드와 로렌스는 결국 함께 할 수 없다. 헤어질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사랑이 변해요, 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랑이 변한 게 아니라 상황이 변한 것이다. 프레드는 이미 로렌스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를 평생 함께 할 동반자로, 자기 삶을 공유할 타인으로 ‘수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참고 희생하고 이해해야만 성립되는 관계란 고통이다. 그걸 사랑의 위대함이라는 미사 어구를 동원해 애써 치장하려는 노력은 웃기는 짓이다. 사실 가장 이기적인 건 로렌스다. 세월이 흘러 마주한 자리에서 고상하고 투쟁적인 말을 늘어놓는 로렌스에게 “이제 그만 땅으로 내려오시지”라고 말하는 프레드는, 그래서 솔직하고 통쾌하다. 극복할 수 없는 다름을 타인에게 수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다름 그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 만큼이나 저열하고 폭력적인 행동이다.

터치스크린

로렌스는 자기를 찾았고, 앞으로도 그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프레드는 가정을 꾸렸고 자식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그 언젠가 프레드가 로렌스의 등에 써주었던 글귀를 떠올릴 것이다. “건강을 지킬 것과, 위험을 피할 것과, 과거를 잊고 희망을 가질 것을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해” 다 이루어졌다.

허지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