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노트르담 드 파리’의 귀환

관객들이 좋아하는 뮤지컬 작품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무대가 화려하거나, 배우가 멋지거나, 또는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저마다 최고의 뮤지컬을 손꼽는다.

개인적으로는 이달 하순에 막을 올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꼽겠다. 무엇보다 음악이 참 좋다. 14~15년 전 지인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됐을 때 한참동안 오리지널 캐스트의 음반을 반복하며 듣던 기억도 생생하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선율이 끊임없이 입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시인 그랭구와르의 ‘대성당의 시대’부터 시작해 콰지모도가 부르는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 집시 여인이 노래하는 ‘아베 마리아’와 세 남자가 함께 부르는 ‘아름답다’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흐르는 감미로운 선율은 이 작품만의 고유한 향기를 자아낸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공연. |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리에겐 ‘노틀담의 꼽추’라는 제목이 좀 더 익숙하지만, 원래 프랑스 소설의 제목은 ‘노트르담 드 파리’가 맞다. 물론 파리 한가운데의 시테 섬에 있는 바로 그 유명한 성당을 말한다. ‘노트르담’은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천주교에서 예수의 모친을 신성시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래서 종교적인 의미도 남다르다. 뮤지컬의 원작이었던 소설은 바로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혼돈과 갈등, 그리고 금지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큰 인기를 누렸던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이다.

영화 보기가 취미였던 중·장년층이라면 안소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나왔던 1961년작 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 지상파 TV에도 명절이면 빼놓지 않고 방송되던 시대의 명작이다. 아일랜드와 멕시코 태생의 부모 덕에 복합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안소니 퀸은 어눌한 말투가 답답해 보였던 배우지만, 덕분에 이 작품에서 보여준 꼽추 연기와 움직임은 한참이나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실감나고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뮤지컬 무대는 여기에 노래와 음악, 춤과 아크로바트라는 다양한 ‘들을거리’와 ‘볼거리’가 더해져 일대 장관을 연출해낸다.

흥미로운 점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뮤지컬 산업에서 프랑스는 그저 변방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1998년 파리에서 처음 막을 올린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일거에 유럽 대륙을 뮤지컬 열풍으로 몰아갔다.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아 이후 등장한 ‘로미오와 줄리엣’, ‘십계’ 등은 프랑스 뮤지컬 시장의 흥행을 이끌어간 대작 뮤지컬들이다. 그래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 뮤지컬의 중흥을 이뤄낸 대표적인 문화 산물로 손꼽히게 됐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공연. | 경향신문 자료사진

흥행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프랑스 대중들의 취향에 어필한 것이 주효했다. 아름다운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를 향한 꼽추 콰지모도, 성직자 프롤로, 그리고 약혼자가 있던 근위대장 페뷔스의 ‘이뤄질 수 없는’ 연정이 오히려 객석의 진한 아쉬움을 자아냈다. 여기에 영미권 작품들과 달리 노래하는 배우와 춤추는 무용수를 철저히 분리시켜 종합예술로서 뮤지컬을 재구성해낸 것이 신선함을 더해줬다.

특히 노랫말에 담긴 인문학적 정서와 유럽의 장구한 역사, 그리고 그 경험으로 인한 무게감은 이 작품의 흥행을 이끌어낸 일등공신들이다. 무대에서는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물결과 단테의 신곡, 루터와 개신교 등이 하나씩 열거되며 당시의 시대상을 조명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근대 신문의 전신인 팸플릿의 유행, 새로운 사상의 전파에 대한 노랫말들에서는 유럽 근대사에서 풍기는 묘한 향기마저 느껴진다. 유럽이기에, 그리고 프랑스이기에 가능한 역사와 고전의 재해석이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구현된 셈이다.

문화내시경

처음이 아니라서 더욱 기대되는 면도 없지 않다. 무대는 반복되고 재생되며 오히려 생명력을 더한다. 2013년 늦여름을 장식할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귀환이 흥미로운 이유다. 즐거운 마음으로 개막을 기다려본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