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믿음이 없다

9·11 테러는 왜 일어났을까. 이 질문에 대한 상식적인 대답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인 알 카에다 소속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제리 폴웰이라는 이름의 목사는 2001년 당시 색다른 해석을 내놨다.

“이교도들, 낙태 찬성론자들, 여성주의자들, 그리고 게이와 레즈비언들… 미국을 세속화하려 하는 이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나는 손가락을 들이대고 말한다. 너희가 이 일이 일어나는 데 일조했다고.” 한마디로 미국인들의 세속주의가 9·11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국가적 재난을 무신론자와 이교도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는 전도된 가치관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망언 종결자’가 미국 우파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꼽혔던 스타 목사라는 점이다.

<b>신 없는 사회</b><br>필 주커먼 지음·김승욱 옮김 마음산책·1만6000원

신 없는 사회
필 주커먼 지음·김승욱 옮김 마음산책·1만6000원

미국은 기독교의 나라다. 미국 대통령은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다. 방송에서 유력 정치인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종교관을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기독교적인 미국 사회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과 정의가 흘러넘치는 사회일까. 현실은 그 반대가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 없는 사회>는 이런 미국 사회에서 갑갑함을 느낀 사회학자 필 주커먼이 “종교가 없으면 사회가 파멸한다는 주장에 도전해서 분명하게 반박”하기 위해 쓴 책이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회는 부도덕하고 타락한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의 행복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기독교 인구의 비중이 낮고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성경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는 이들이 거의 없는 덴마크와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다. 기대수명, 여성권한척도, 인간개발지수, 범죄율, 자살률 등 수많은 지표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은 이런 지표들에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저자가 덴마크에 체류하는 동안 그곳 사람들과 종교를 주제로 나눈 대화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서 9개월쯤 체류한 모르텐과 나눈 대화다. 합리적 신앙관을 가진 모르텐에게 미국인들의 기독교 신앙은 낯설기만 하다. 종교를 믿더라도 개인적으로 간직하는 덴마크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특정 종교인이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기도를 했더니 예수님이 치료해줬다’는 유의 말들도 합리적 신앙관을 가진 덴마크인은 납득하기 힘든 사고방식이다.

신간 탐색

저자는 “오늘날 가장 문명화되고 정의롭고 안전하고 평등하고 인간적이고 번영하는 사회를 만든 것은, 가장 종교적인 나라가 아니라 가장 세속적인 나라들”이라고 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