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개신교의 힘을 꺾은 ‘시민의 등장’

2003년 1월 11일, 서울시청광장에서는 서로 다른 요구를 하는 시위가 동시에 벌어졌다. 광장 한편에는 그전 해 미군 장갑차의 한국 여중생 압살 사건으로 촉발된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요구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반공과 친미를 외치는 보수성향 개신교 단체들의 집회가 열렸다. 제 나라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을 계기로 불평등한 한·미간 협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벌어진 장소에서 친미를 외치는 맞불시위를 벌인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 개신교는 왜 극우적이며 친미적인가. 저자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목사이자 민중신학 연구자다. 진보적 개신교인인 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취한 방법은 한국 개신교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 그곳으로부터 다시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연역해내는 것이다.

<시민K, 교회를 나가다>
김진호 지음·현암사·1만3800원

한국 개신교의 친미 성향은 어디에서 발원했을까. 1893년부터 1983년까지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의 90%는 미국인이었다. 한국에 개신교를 전파한 외국인들의 국적을 굳이 따질 이유는 없지만, 문제는 그 중 대다수가 “미국에서도 가장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개신교 신자들의 수는 해방 직후까지도 전 인구의 3%를 넘지 않았지만, 선교사들이 세운 미션스쿨에서 근대적 고등교육을 배운 이들은 식민지 조선의 다른 집단을 압도하는 담론형성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식민지 시기 개신교 신자들의 40%는 서북 지역 장로교 신자들이었는데, 이들은 개신교 신자들 중에서도 가장 근본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자유주의 성향 신자들이 신사참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반면, 서북 지역 장로교 신자들에게 신사참배는 “신앙을 산산이 붕괴시키는 체험”이었다면서 이 굴욕감이 공산주의를 악마화하는 방향으로 전이되었다고 지적한다. 해방 후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월남한 이들은 남한 개신교의 주류로 자리잡는다. 마침 미군정 당국은 이들에게 일본인들이 두고 간 종교재산을 무상으로 공여했다.

신간 탐색

저자는 ‘시민의 등장’과 함께 개신교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고 본다. 산업화 시기 교회는 앞선 서구문명을 체험할 수 있는 ‘모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개성을 강조하는 소비주의와 민주화의 도래는 개신교 문화를 낡은 것이거나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때문에 저자는 개신교 신자 감소 추세가 “뿌리 깊은 구조적 사회 변동의 산물”이라고 본다. 저자는 한국 개신교가 ‘작은 교회’를 지향함으로써 타자들과 공존하는 “사회적 영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