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몇 해 전 봄, 집안에 키우던 꽃화분이 시들시들해졌습니다. 햇볕도 충분하고, 물도 꽃집에서 가르쳐준 대로 꼬박꼬박 잊지 않고 줬지만 그 꽃나무는 개화는커녕 자신의 생명조차 유지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할 수 없이 꽃화분을 집 바깥에 두었습니다. 며칠 뒤 화분에는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시들시들하던 꽃나무가 제법 생기를 찾아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생기를 잃어가던 꽃나무를 일으켜 세운 것은 무엇일까? 햇볕도 그대로였고 물도 그대로였습니다. 다른 것은 집 바깥의 바람입니다. 꽃나무를 가만히 살펴보니 바람이 불면 여린 꽃나무가 바람에 까딱까딱거렸습니다. 그리고 적당히 물기가 밴 화분 위의 흙도 살그머니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람이 불고 꽃나무 줄기가 흔들거리면서 마치 화분의 흙이 숨을 쉬는 것처럼 말입니다. 며칠 후 꽃나무는 꽃을 피워올렸습니다.

그때 문득 유명한 시가 떠올랐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입니다.

“흔들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편집실에서는 매주 월요일 머리를 싸맵니다. 매주 표지스토리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고민합니다. 이번주에도 역시 고민하다가 결국 ‘야권연대’를 표지스토리로 하기로 정했습니다. 서울 관악을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전국에서 야권연대의 시너지 효과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경선 조작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게다가 여러 군데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정희 대표는 주위의 사퇴 요구에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야권지지층에게는 안타까운 날이었을 것입니다. 정권을 심판해야 할 야권이 눈 앞의 자기 이익 때문에 적전 분열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표지스토리로 ‘야권연대’를 취재해온 편집실에서는 다른 성격의 고민을 했습니다. 이것을 계속 표지스토리로 끌고 가야할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마감인 금요일까지 상황이 계속 진행되고, 그래서 주말 사이에 다른 방향으로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면 표지스토리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권연대가 계속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만큼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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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날인 금요일, 결국 이정희 대표가 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 야권연대는 겨우 봉합됐습니다. 편집실에서는 월요일 준비했던 대로 야권연대를 표지스토리로 마무리했습니다. 편집실에서는 표지스토리로 애간장을 태웠던 한 주지만 야권 지지층에게는 혹 야권연대가 깨지지는 않을까 마음 졸였던 한 주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이 시가 마음에 와 닿을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