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나만 위할 것인가, 우리를 위할 것인가

<투혼>

프로야구가 스토브리그를 맞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FA(자유계약선수)를 선언한 이대호 선수의 몸값은 100억원대까지 치솟았다. 일반인들이라면 상상도 못할 액수. 수많은 광고와 상품, 마케팅이 뒤따르는 프로스포츠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통산 149승. 3년 연속 MVP에 빛나는 프로야구선수 윤도훈(김주혁 분)이 있다. 그는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 자이언츠의 간판스타다. 부산은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도시. 치킨집에서도, 병원에서도, 술집에서도 그는 ‘영웅’이다. 그런 그에게 패전처리를 해달라는 감독의 명이 떨어진다. 슈퍼스타를 이렇게 대접하는 감독이 어딨나, 제 성질에 못이긴 그는 상대팀 타자에게 빈볼을 던져 2군으로 추락한다.

야구장을 벗어나면 그는 더 이상 스타가 아니다. 바람을 피우다 집에서 쫓겨났고, 자존심을 내세우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아내 오유란(김선아 분)은 사고만 치는 철부지 남편이 밉다.

김상진 감독의 영화 <투혼>(2011)은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프로야구 영화다. 도훈이 뛰는 팀이 롯데 자이언츠, 맞서는 상대팀이 삼성 라이온즈다. 앞선 야구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글러브>에 비해 야구신이 훨씬 많고 실감난다. 야구장 신은 보름간 마산구장에서 실제 촬영됐다.

윤도훈은 자신만 아는 슈퍼스타다. 자신을 위해 공을 던진다. 가족이나 이웃이나 친구, 팬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내 유란의 수술 때문에 등판을 포기하려는 도훈에게 유란이 말한다. “지금까지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만 공을 던졌잖아. 이번만은 나를 위해 던져주면 안 돼?”

나를 생각하느냐, 내 가족과 이웃도 생각하느냐. 여기에 따라 자본주의도 갈린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능력을 발휘해 자유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많은 것을 얻는 체제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도 모두가 똑같은 색깔을 내는 것은 아니다. 미셀 알베르, 홀, 소스키스 등은 자본주의도 다양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다양성(VOC·Varieties of captalism) 이론이다.

자본주의에는 크게 ‘자유시장경제(LEM)’와 ‘조정시장경제(CEM)’가 있다. 각 체제는 기업지배구조·산업정책·금융시스템·노사관계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자유시장경제는 미국, 영국식 모델이다. 개인의 능력이 극단적으로 중시된다. 기업의 인수·합병을 선호하고, 언제든 해고가 가능한 노동 유연성이 강조된다. 단기 성과가 중요하다. 정부 개입은 최소화된다. 급진적인 혁신이 종종 이뤄진다. 신자유식 무한경쟁체제다. 도훈의 삶은 자유시장경제체제와 닮았다.

반면 나보다는 ‘우리’를 더 생각하는 자본주의도 있다. 스웨덴, 프랑스식 조정시장경제다. 적대적인 인수·합병에 반대하고, 종신고용을 지지한다. 기술 공유에 너그럽고, 장기적인 성과를 추구한다. 점증적인 기술혁신을 이뤄낸다. 승리를 거둬야 하는 목적에 ‘가족’이 추가됐다면 조정시장경제에 가깝다.

아내를 위해 등판한 도훈은 부활의 투구를 한다. 8회까지 노히트노런. 마지막 9회. 그는 “이젠 됐다”며 마운드를 내려온다. 1회만 더 버티면 그는 최고령 노히트노런을 기록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테고 부가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마운드는 더 이상 영광을 독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무대가 아니다. 가족과 그를 지지해준 팬을 위해 희생하는 무대다. 도훈은 비로소 남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영화 속 경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모델일 뿐이다. 이를 무작정 좇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나라마다 자본주의 역사와 경제체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미국 출신의 경제학자가 많아 경제학도 한 쪽에 치우쳤다. 우리에게 맞는 자본주의는 무엇일까. 한국식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