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TV]김수현표 대사

일흔을 바라보는 노(老)작가의 ‘대사 빨’은 강하다. ‘속사포’라고 표현될 정도로 대사는 짧고 세다.

SBS 월화미니시리즈 <천일의 약속>(연출 정을영)은 <부모님 전상서> <내 남자의 여자> <인생은 아름다워>로 흥행 신화를 이어온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다. 10월 18일 1회가 전파를 탄 후 매회 시청률이 상승, 26일 전국 시청률 17.5%(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를 기록했다. 남자주인공 박지형(김래원)은 친구의 사촌동생인 이서연(수애)을 사랑하지만 집안끼리 얽혀 있는 약혼녀를 버리지 못한다. 부모 없이 남동생을 키우면서 어렵게 자란 서연도 지형을 잡지 못한다. 서연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면서 이들의 사랑은 더 간절해지고 애틋해진다.

<천일의 약속>의 수애 / SBS 제공

김수현 작가의 강점은 ‘속사포 대사’이다. 등장인물은 단문의 대사를 빠르게 주고받고, 시청자들의 집중도는 더 높아진다.

“너무 지겨우면서 한 일인데 미안하네요.” “반성하면 돼요.” “죄송합니다. 반성합니다.”

서연은 자신에게 사례를 하러 온 출판 담당자와 이 같은 대화를 나눈다.
서연의 독백은 마치 시(詩) 같다.

‘10년 뒤에는 어떨까. 우리 마음은 어떤 식으로 변해갈까. 너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나는 너를 언제쯤이면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내려놓을 수는 있을까. 5년 후쯤이면 당신은 아빠가 되어 있겠지. 10년 뒤에는 허물어진 40대 아저씨가 되어 있겠지. 그때쯤이면 오늘이 누렇게 희미해진 옛날 사진 같겠지. 내려놓는지도 모르게 어느날부터 내려놓았단 걸 알게 되겠지. 그 후로도 겹겹이 날들이 쌓여가고 당신한테 나는 공룡시대 화석이 되겠지.’

김수현 작가는 대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미묘한 차이 하나도 용납하지 않고, 애드리브는 생각조차 못한다. 수애는 “대사가 많지만 토씨 하나 틀리면 안 되기 때문에 외우고 또 외운다”며 “김수현 선생님이 의도한 정확한 부분을 시청자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문이 아닌 단문형, 구어체보다 문어체에 가까운 대사는 시청자들을 집중시키기도 하지만 거부감을 부르기도 한다.

<천일의 약속>의 수애 / SBS 제공

시청자들은 “수애씨의 표정 연기나 우는 연기는 좋은데 대사만 치면 오글거린다”(최옥심) “대사가 공감가지 않는다. 뭔가 얽매여서 연기하는 느낌이다”(조현정) “잔잔하고 부드럽게 풀어가야 할 멜로에서도 항상 똑같은 속사포 대사다”(조수비)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이 없다. 시청자도 쉽지 않게 만든다”(강은정)라는 의견을 올렸다.

음표를 짧게 연주하는 ‘스타카토’는 강렬하다. 초반 몰입하는 데 있어 이처럼 유용한 도구가 없다. 시청자들은 짧은 호흡으로 끊어지는 대사에 집중한다. 사람들이 입으로 말하는 단어라기보다는 책 속에 있는 말에 가까운 대사는 주목을 끌면서도 거슬린다. 어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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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자란 서연과 달리 수애의 의상 대부분이 ‘명품’으로 알려지면서 ‘옥에 티’라는 지적을 받았다. 어색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회사원이라고 해서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명품’을 수용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주인공들만 다른 세계의 언어를 이야기한다면 시청자와의 소통은 힘들어진다.

<박은경 경향신문 엔터테인먼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