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20세기 초반 미국자본주의 맹점

좌파 논객 김규항씨는 2004년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일 가운데 하나가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것이다. 그런 내가 선물용으로 여러 권 사본 책이 두 권 있다. 전에 이야기한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과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자본주의의 비극은 자본주의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본주의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에 살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인간이니 세계니, 민주주의니 공화국이니 떠들어대는 건 가련한 일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그런 가련함을 면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1936년에 나온 책이지만 이 책보다 나은 도구는 아직 없다.”

<휴버먼의 자본론> 리오 휴버먼 지음·김영배 옮김 어바웃어북·1만6000원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 체제에 산다. 그래서 누구나 자본주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체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그 체제에 대한 지식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김씨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이 책보다 나은 도구는 아직 없다”고 말한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한국어판은 지난 2000년에 나왔지만 오랫동안 입소문으로만 독자들과 만났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체제의 균열 지점이 현실적 위협으로 드러나면서, 지금은 대형 인터넷 서점들이 ‘강력추천’하는 책이 됐다.

휴버먼의 두 번째 한국어판 번역서가 나왔다. 그 사이에 높아진 인지도를 반영하듯 제목에 저자 이름이 포함됐다. <휴버먼의 자본론>. 1950년 영어판 출간 당시 제목은 ‘사회주의에 관한 진실’(The Truth about Socialism)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고대사회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뤘다. 사회경제적 조건과 역사적 문헌을 교직해 자본주의의 성숙 과정을 명쾌하게 그려낸 것으로 정평을 얻었는데, <휴버먼의 자본론>은 전작이 멈춘 지점에서 시작한다. 1920년대 대공황기 이후부터 1940년대까지가 시간적 배경이다. 공간적으로도 유럽에서 미국으로 서술의 초점이 이동했다. 전작이 유럽 경제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을 통시적으로 종단했다면, <휴버먼의 자본론>은 계급, 잉여가치, 축적, 독점, 분배, 공황, 전쟁, 국가 등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스펙트럼을 횡적으로 가로지른다.

신간 탐색

휴버먼은 20세기 전반기 미국을 대표하는 좌파 지식인이었지만, 그의 글은 추상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대신 사실이 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맹점을 찌른다. 책에는 대공황기를 전후한 미국 사회의 기업인, 언론인, 학자, 정치인들의 발언과 당시 미국 정부나 학계가 생산한 통계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이 발언과 통계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적으로 옹호하는 인물과 기구에서 나온 것이다. 휴버먼이 후기에서 밝힌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과 자료에서 인용한 문구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강력한 미덕 중 하나다. 복잡한 주제를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재능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도드라진다. 책이 세상의 진실을 파헤치는 도구라면, 이 책은 유연하고 균형잡힌 도구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