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성장이 없다면 복지도 없다고?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요시다 다로 지음·위정훈 옮김·파피에·1만5000원

복지를 해야 한다는 쪽이든 복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이든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하나 있다. 재정 문제다. 더 많은 복지를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복지를 성장 잠재력과 연관지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이 없으면 복지도 없는 것일까.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불행할 수밖에 없는 걸까.

지방공무원으로 일하는 일본인 요시다 다로가 쓴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책이다. 한두 가지 지표를 보자. 쿠바의 소득수준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상의료를 실시한다. 덕분에 신생아 1000명당 5년 이내 사망률이 미국보다 낮다. 1인당 의사수도 높다. 영국 의사들은 1인당 1800명을 진료해야 하지만, 쿠바의 경우에는 1인당 300명에 불과하다.

무상의료를 시행하면 전반적인 의료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서 첨언하자면, 첨단의료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쿠바는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백신 개발 및 난치병 치료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인력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쿠바 의료복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패밀리 닥터 제도다. 패밀리 닥터는 한국으로 치면 동네의원에 가까운 1차진료 기관으로, 간호사와 팀을 이뤄 통상 지역공동체 주민 120가구를 돌본다. 이들은 지역사회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임상기록을 소상히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병이 커지기 전에 선제적인 예방치료가 가능하다. 2005년 기준으로 쿠바 의사 7만594명 중 3만3769명이 패밀리 닥터다. 전 국민의 98%가 패밀리 닥터의 돌봄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쿠바의 독특한 의사양성 과정이 결합돼 있다. 쿠바에서는 의대를 졸업하면 일반의사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한 단계 위인 ‘기초종합의료 의사’ 자격을 얻으려면 패밀리 닥터 밑에서 최소 2년간 연수를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의학 석사나 박사 자격을 딸 수 있다.

이처럼 독특한 제도에는 남다른 철학이 깔려 있다. 쿠바 의료계는 한 사람의 건강상태의 98%는 생물학적 조건이 아니라 “가족, 커뮤니티, 환경 등 그밖의 요소”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쿠바 연구진은 개도국에 수출하는 백신에 대해서는 로열티를 받지 않는데, 이 또한 “백신 개발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잃는 아이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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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놀라운 점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료를 포함한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적대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원을 소련에 의존하던 쿠바는 소련 붕괴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그러나 1997년 의료비는 1990년 대비 124%가 오히려 늘어났고 사회보장 예산은 140%가 늘었다. 같은 기간 군사비를 55%나 삭감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체 게바라의 말이다. “단 한 명의 인간의 생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의 전 재산보다도 100만배나 더 가치가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