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애의 북위66.5도](16)그 많은 북극곰은 어디로 갔을까

좌충우돌 해외방랑기 ‘캐나다 북극곰 투어’

북극곰을 보러 가는 투어 버스는 아침 해도 뜨기 전에 숙소 앞으로 왔다. 노란색 스쿨버스였다. 먼저 버스에 타고 있던 관광객들이 손을 들고 아는 척을 했다. 노란 점퍼가 써스캐춘 아줌마, 빨간 바바리가 똑똑이 아줌마다. 피난 열차 같은 처칠행 열차에 몸을 싣고 하룻밤을 함께 보낸 우리는 이미 끈끈한 동지였다. 빈 좌석이 보이면 일단 가방부터 던졌던 그 밤, 점퍼를 담요 삼아 온 몸을 구겨 넣었던 그 새벽, 기차 안 화장실에서 차례로 이를 닦았던 그 아침, 3시간 늦게 출발한 기차가 반성의 기미도 없이 정확하게 3시간 연착해 처칠역에 도착했던 그 낮. 돌아가는 기차는 사흘 뒤에야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 열차로 와서 한 열차로 갈 ‘운명 공동체’였다.

캐나다 처칠 북극곰 투어에서 투어 버스에 다가온 북극곰.

곰 찾아 툰드라 삼만리
동지들은 오후 내내 처칠 시내에서 마주쳤다. 처칠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구 850명. 북극곰 관광객이 몰려드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엔 1200명으로 불어난다. 그래도 수만명의 관광객을 감당하긴 어려워 관광객으로 왔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눌러앉는 사람들도 있다. ‘처칠 모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싹싹한 써스캐춘 아줌마가 “우체국에 가면 북극곰 소인을 찍어준다!”며 여권을 꺼내 보였다. 식당 옆 기념품 가게에서 컵받침이며 머그컵을 구경하고 있는데, 똑똑이 아줌마가 “오늘 저녁에 초등학교에서 북극곰 강좌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라며 뜨거운 동지애로 정보를 공유했다. 고든 곶으로 향하는 스쿨버스 속의 우리는 흰 털만 보여도 자지러질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처칠 시내에서 30분 거리, 처칠만 야생관리구역 일부인 고든 곶은 북극곰들이 바다가 얼기를 기다리는 ‘대합실’이다. 북극곰이라고 한해 내도록 얼음 위에서 보내지는 않는다. 처칠의 북극곰들은 여름 한 철을 내륙의 와푸스크 국립공원에서 나고, 바다가 얼기 시작하는 10월 말 우르르 줄을 지어 바다로 달려간다. 전 세계 관광객과 사진작가와 방송국과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이때 모두 처칠로 달려온다. 내가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건대 내셔널지오그래픽도, BBC 북극곰 다큐도, ‘북극의 눈물’도, 북극곰이 나오는 장면은 다 처칠에서 찍었다. 전 세계 북극곰은 2만2000여마리, 그 중 절반이 허드슨만에 살고, 처칠 일대에만 1200마리가 산다. 사람보다 북극곰이 더 많다. 말하자면 ‘물 반 곰 반’인 거다. 우리의 버스에도 커다란 렌즈를 둘러멘 ‘프로 삘’의 작가가 한 명 타고 있었다.

우리는 고든 곶 입구에서 트랙터처럼 바퀴가 커다란 ‘툰드라 버기(Tundra Buggy)’로 갈아탔다. 표면만 얼었다 녹았다 또 얼기를 거듭하는 툰드라 들판을 방황하며 북극곰을 찾아다니는 것이 오늘의 과업. 가이드를 겸해 국제 북극곰 보호단체 ‘폴라 베어 인터내셔널’ 활동가도 버기에 올랐다. 북극곰의 생태적 중요성과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하려고 탔겠지만, 관광객들은 그녀가 1㎞ 밖의 북극곰도 찾아내는 소머즈의 눈을 가졌을 거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손가락만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눈을 의식한 듯 그녀가 멀리 희끄무레한 물체를 가리켰다. “저기!… 북극 토끼네요. 네, 우리가 아는 토끼보다 약간 큰데 털이 희죠. 보호색이라고나 할까.”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걱정 마세요, 작년엔 40마리나 우글거렸거든요.”

고래도 곰도, 내가 나타나면 텔레파시라도 보내는 걸까. “어이, 이야기 들었어? 걔 또 왔대. 몇 시간은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겠어.” 그것은 마치 우리 동네에서 회사 앞으로 가는 721번 버스가 내가 기다릴 때마다 작정하고 배차시간을 조정해 절대 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40마리나 우글거렸다는 북극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흰 것은 토끼요, 여우요, 북극 뇌조였다. 처칠엔 북극곰이 너무 많아 동네 쓰레기통까지 뒤진다더니, 오늘은 일제히 소풍이라도 갔단 말인가.

빠른 속도로 관광객 앞을 지나가는 북극곰.

숙소 카운터에서 보고 외워온 ‘북극곰 비상전화 654-2327’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일종의 ‘북극곰 119’ 전화번호다. 654를 누르고 영문 철자로 B-E-A-R를 누르면 된다. 구조대가 즉각 출동해 말썽꾸러기 북극곰을 포획해 헬기에 대롱대롱 매달아 고든곶이나 와푸스크 국립공원에 풀어 놓는다. 개전의 정 없이 꾸준히 마을에 출몰하는 ‘죄질 나쁜’ 북극곰들은 허드슨만이 얼 때까지 철창 신세를 지게 된다. 공항 근처에 ‘북극곰 감옥’이 있다. 28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는데, 작년엔 어찌나 호기심 많고 씩씩한 곰들이 많았는지 감옥이 다 찼다고 한다. 그 인간 친화적인 곰들은 다 어디로 가고 고든 곶엔 찬 바람만 불었다. 북극곰 인터내셔널 활동가가 민망한 손가락을 움직여 수프와 빵을 날라줬다.

카메라 세례 속 걸어온 곰
갑자기 버기 안이 웅성거렸다. 먹던 수프를 내려놓고 똑똑이 아줌마가 창가로 다가갔다. “오 마이….” 곰이었다. 흰 점 하나가 지평선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곰은 성큼성큼 다가와 버기 앞을 가로질렀다. 이미 벌떡 일어나 있던 사람들이 이쪽 창가에서 저쪽 창가로 몰려왔다. 훌륭한 차다. 그래도 기울지 않는다. 놈은 우리 옆의 또 다른 버기를 향해 정면 돌진했다. 오전 내내 나란히 허탕을 쳤던 경쟁 여행사 차다. 곰은 바퀴를 붙들고 벌떡 일어섰다. 포효는 아니고, 가르랑거리는 북극곰의 말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쯤 됐을 것이다. “혹시 남는 밥이 있으시면….”

할리우드 연예 스타도 부럽지 않을 카메라 세례 속에서 곰은 바퀴만 툭툭 쳤다. “북극곰은 정말 하얗구나.” 인간 북극곰(여행 동행자)이 문득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눈처럼 새하얗지는 않지만 깨끗한 베이지색이었다. 얼룩덜룩 녹색 이끼가 낀 어린이대공원 북극곰 ‘썰매’와는 달랐다. 살고 있는 곳의 기온이 너무 높으면 북극곰 털 속에 조류가 번식해 이끼가 낀다. 덥지는 않지만, 이 하얀 북극곰은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원래는 차가운 북극 바다의 물범을 먹고 산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줄어들면서 사냥을 하기 위해 수영하는 거리가 길어졌고, 배 고프고 지친 북극곰들이 익사하고 있다. 전 세계 어린이의 친구, 북극 생태계의 제왕, 세계적 멸종위기종이 처해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최명애의 북위66.5도

한참을 어슬렁거리던 북극곰은 결국 수확 없이 떠났다. 북극곰 활동가에게 귀 따갑게 잔소리를 들은 관광객들은 콩고물 하나 던져주지 않았다. 곰은 엉덩이를 흔들며 사라지더니 멀찌감치 툰드라 덤불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배를 긁으며 낮잠이라도 잘 모양이었다. 그날 오후에 만난 또 다른 북극곰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쪼그리고 엎드려 자는 모습이 인형처럼 귀여운 곰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날 오후 내내 뺑글뺑글 돌아 급기야 고든 곶의 지형지물을 외울 정도가 됐지만 더 이상의 곰은 보지 못했다. 전 세계 북극곰의 수도 처칠, 그 중에서도 곰이 떼로 몰려다닌다는 고든 곶에서. “어린이대공원 북극곰한테 처칠 친구들 안부라도 전해주려고 했는데….” 인간 북극곰이 창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러게, 영 면목 없게 됐네.”

<글·사진 최명애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glauk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