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애의 북위66.5도]⑮ 1282㎞ 대장정, 대평원에 고개 숙이다

좌충우돌 해외방랑기 ‘캐나다 처칠 가는 길’

내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잘 안 믿는데, 정말이다. 우리는 캐나다 처칠을 가기 위해 결혼했다. 벌써 10년도 더 전인데, 북극곰(여행 동행자)이 인도를 갔다 오면서 일본항공 기내지를 가져왔다. 하얀 북극곰들이 어리광을 부리며 눈밭을 뒹굴고, 사람들은 컨테이너 박스 같은 건물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북극곰을 보고 있었다. (앞으로 몇 회는 사람 북극곰과 동물 북극곰이 난무할 테니, 편의상 ‘사람’이 붙어 있지 않으면 동물 북극곰인 걸로 해두자.) 일본어 학원 3개월 만에 드디어 가타카나 읽는 법을 깨우친 내가 기특하게도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었다. ‘카나다 처어치루’. 북극해로 연결되는 허드슨 만에 면해 있는 조그마한 마을인데, 바다가 얼어붙는 10월 말이면 수백 수천 마리의 북극곰이 마을을 가로질러 북극해로 떠난다.

처칠 가는 길의 새벽 풍경. 침엽수림 너머로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몇 년 뒤 우리는 정말로 처칠에 북극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처칠에 가려면 한국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날아가서, 밴쿠버에서 다시 위니펙으로 날아가서, 위니펙에서 일주일에 세 번 다니는 기차를 타야 한다. 일주일 휴가에 주말을 붙여도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번개처럼 결혼하면 일주일 휴가를 준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과년한 딸과 아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결혼하겠다고 하자 양가 부모님은 할렐루야를 부르셨다. 일단 북극곰 출몰 시기에 맞춰 10월 말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 동나기 시작한 기차의 좌석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북극곰 투어도 예약했다. “신혼여행인데, 흑, 평생 꼭 한번, 흑, 지구 반대편에서, 흑”으로 점철된 메일을 보내 간신히 숙소도 잡았다. 청첩장보다 북극곰 투어 여행사 ‘프런티어 노스’의 안내 브로슈어가 집 우체통으로 먼저 날아왔다.

끝없는 밀밭 너머 거대한 침엽수림
사람 북극곰과 내가 의기양양하게 브랜던으로 입성한 것은 결혼식으로부터 사흘 뒤였다. 위니펙에서 기차를 타면 곧장 처칠이었지만, 우리는 차를 빌렸다. 도로가 끝나는 곳까지는 달려가보고 싶었다. 위니펙에서 처칠까지 1282㎞, 도로는 처칠 남서쪽 548㎞의 톰슨에서 끊긴다. 차를 빌린 김에 조금 둘러 가더라도 사람 북극곰이 동물 북극곰을 향한 갈망을 키웠던 브랜던에도 가보기로 했다. 사람 북극곰은 캐나다 중부 평원지대의 이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어학연수를 빙자해 반 년쯤 잘 놀았다. 일요일마다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로 달려가 피자를 먹었다고 한다.

다시 온 브랜던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레고 블록 같던 사진 속의 브랜던대학교와 나지막한 건물들은 여전했지만, 북극곰이 방을 얻어 살던 집의 불은 꺼져 있었다. 주말에 문 여는 유일한 식당이었다던 중국집 웨이난은 평일 점심에도 뷔페 메뉴를 팔았다. 북극곰과 그의 친구들의 문화 중심지였던 월마트는 교외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북극곰이 자전거를 타고 갔다 거부당했다던 버거킹 ‘드라이브 인’에 자동차를 몰고 가 어니언링을 사 먹었고, 북극곰이 외로이 떠나는 버스들의 시간표를 읽었다던 버스터미널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월마트에 가서는 할인 스티커가 붙어 있는 ‘아바’의 CD와 두르기만 해도 보풀이 일어나는 싸구려 목도리를 샀다. 여행의 동반자로 챙겨 간 ‘슬픈 흰 곰의 노래’라는 책에서는 스발바르 제도에 사는 늙은 현자 유트빅의 이야기가 나왔다. “추억이란 세월의 체로 걸러낸 뒤 남은 좋은 시절의 기억을 먹고 사는 감미로운 쓸쓸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무로 만든 낡은 처칠 기차역.

브랜던에서 톰슨으로 달리는 우리의 자동차는 추억보다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정확히는 평지 구간 시속 140㎞, 커브 구간 시속 110㎞였다. 속도 감시 카메라에 찍히면 어떡하나 걱정이 잠깐 들었지만, 경찰이 우리 차 한 대 잡자고 기름 아깝게 수백 킬로 달려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2차선 고속도로의 앞으로도, 뒤로도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문명세계와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은 도로를 따라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전력선과 전화선뿐이었다. 끝없는 밀밭만 계속되던 평원엔 자작나무와 침엽수가 숲을 이루고, 숲과 숲 사이엔 인디언이 부족을 이뤄 살았을 것이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졌고, 평원은 짧은 여름 동안 푸르렀다 바람이 차가워지면 잿빛으로 변했을 것이다. 오늘이 내일과 같고, 내일이 그 다음날과 같은 대평원, 프레리였다. 지금 그 프레리에는 자기의 땅에서 쫓겨난 인디언들과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온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산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순교했다는 선교사의 추모비 앞에서 사과 머핀을 먹고, 양파 모양의 둥근 돔이 세워져 있는 우크라이나식 성당 앞에서 커피를 마셨다. 첫날에는 600㎞, 둘째날에는 300㎞쯤 달렸던 것 같다.

‘황량한 광산도시’ 톰슨부터 기차여행
도로의 끝은 톰슨이었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전형적 북극 도시였다. 톰슨은 1956년 니켈 광산이 발견되면서 급조됐다. 컨테이너 같은 가건물을 대충 쌓아올려 집으로 삼고,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파는 패스트푸드 식당 몇 곳이 전부다. 니켈이 고갈되면 언제라도 철수할 기세였다. 지역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소 닭 개 양 말 같은 가축을 전시한 ‘동물원’을 보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광부’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감자와 치즈를 옹심이처럼 찐 우크라이나 만두 ‘페로기’도 먹었다. 까마귀들이 녹슨 연료통 앞에서 깍깍대는 것을 구경하면서 관광지도를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샅샅이 읽었다. 북극곰이 그렇게 많아도 지난 50여년간 매니토바주에서 북극곰에 습격당해 죽은 사람은 2명밖에 안 된다. ‘북극곰 주의!’ 프로그램을 잘 실시한 덕분이란다.

북극곰 주의사항도 적혀 있었다. ‘1. 달려서 도망가지 말 것 2.죽은 척하지 말 것.’ 곰은 시속 50㎞로 달릴 수 있고, 곰이 한번 툭 치면 허리가 박살난다. 물론 나무 위에도 올라가면 안 된다. 곰은 나무타기 선수다. 이솝이 인류 전체를 상대로 ‘곰이 나타나면 나무에 올라갈 것인가 죽은 척할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졌건만, 답은 ‘둘 다 안 된다’였던 것이다.

최명애의 북위66.5도

시간을 삽으로 퍼내다 지쳐 우리는 기차역으로 갔다. 동양인 세 사람이 조용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두어 사람이 가방을 메고 씩씩거리며 대합실로 들어왔다. 해가 저물고, 출발 시간을 넘겼지만 기차는 오지 않았다. 연착이었다, 3시간. ‘상습 연착’에 익숙한 사람들은 출발 시간을 한참을 넘기고도 태연하게 대합실로 들어왔다. 기차가 열심히 꾸역꾸역 달려오고 있으니, 30분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소식이 전해질 즈음 대합실은 거의 피난민 수용소였다. 사람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내 사돈의 팔촌의 친구는 엊그제 북극곰 두 마리가 레슬링하는 걸 보고 왔다던데? 요즘 기차 안에서 오로라 본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밤 10시쯤 북쪽 하늘에서 눈을 떼지 말라던데. …그렇다면 나는 반드시 창가에 자리를 잡아야겠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멀리서 철걱철걱, 얼었다 녹은 툰드라의 평원을 엉금엉금 달려오는 기차의 바퀴소리가 들렸다. 정말이다.

<글·사진 최명애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glauk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