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기업권력의 민주주의 압살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업은 그저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일만 하는 조직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업은 유무형의 상품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에 그야말로 ‘목숨’을 건다. 문제는 그 ‘목숨’이 민주주의와 시민의 목숨이라는 사실이다. <스핀닥터>는 “기업 권력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최전선”의 실상을 폭로한 책이다.

<스핀닥터><br />윌리엄 디난 외 지음·노승영 옮김<br />시대의창·2만8000원

<스핀닥터>
윌리엄 디난 외 지음·노승영 옮김
시대의창·2만8000원

기업 권력의 민주주의 압살은 홍보산업을 매개로 이뤄진다. 기업 내 홍보조직, 홍보전문기업, 기업 로비스트, 기업의 재정 후원을 받는 싱크탱크와 민간단체 등이 이 홍보산업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기업에 불리한 정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조작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에 봉사한다.

2004년 11월 일군의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와 관련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저명한 과학자 300여명이 참여한 이 보고서의 핵심은 지구 온난화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주요 언론들이 특필했다. 그런데 영국 진보언론 <가디언>의 보도가 의외였다. <가디언>은 또 다른 일군의 과학자들의 보고서를 인용해, 이 주장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 반박하는 기사를 실었다. <가디언>이 인용한 보고서의 출처는 ‘국제정책 네트워크’라는 단체였다.

국제정책 네트워크는 세계적인 석유기업 엑손의 후원을 받는 단체다. 이 단체는 ‘초당파적 비정부 단체’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엑손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국제정책 네트워크는 “논란을 종식시켜야 했을 때 오히려 이를 증폭시키려 했고, 대중이 기후 변화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실을 ‘부인’하고 ‘논란’을 일으킴으로써 여론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은 홍보산업이 기업 권력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여론 왜곡 방식이다.

국제기구 또한 기업 로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유럽의회 등 유럽연합의 주요 집행기구가 모여 있는 브뤼셀은 로비스트들의 천국이다. 2001년 유럽연합은 유럽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10만여 종에 대한 등록과 검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관련기업들의 격렬한 로비 끝에 법안은 발의된 지 2년 만에 껍데기만 남은 채 개정됐다.

초국적 기업, 우익 싱크탱크, 우익 정치세력이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정보 조작에 대응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코카콜라 불매운동이 대표적이다. 1996년 콜롬비아 코카콜라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이시드로 세군도 힐이라는 이름의 한 노동자가 노조활동을 하던 중 우익 군사조직에 암살당했다. 배후에는 코카콜라가 있었다. 노동자들에 대한 암살, 구타, 협박은 단체협상 직전이나 진행 중에 일어났다. 인도에서는 코카콜라 공장 때문에 공장 인근 지역의 지하수가 고갈됐다. 미국과 유럽에서 노조와 학생, 시민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조직됐다. 코카콜라는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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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권력을 견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건전성과 공공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보 조작 행위를 보았을 때 이를 인식하고 폭로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