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야기]재벌 자녀 비상장 회사 ‘은밀한 거래’

요즘 재벌가에서 이뤄지는 부(富)의 대물림 수법을 보면 갈수록 교묘해진다는 느낌이다. 과거엔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재산을 넘기는 과정에 자산가치를 적당히 줄여 세금을 줄이는 ‘순진한’ 방법을 썼다. 시쳇말로 ‘회계 마사지’라 불리는 작업이 많았던 것이다. 때문에 증여세나 상속세를 두고 국세청과 재벌들이 실랑이 벌이는 일이 많았다.

지난 3월 31일 국세청 회의실에서 열린 제2회 공정사회추진회의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침이 발표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요즘 들어 그런 사례는 많지 않다. 자산가치 마사지로 세금을 줄이는 것은 ‘무식한’ 재벌이나 하는 수법이 된 것이다. 탈세를 찾아내는 국세청의 조사기법이 매우 발전해 재벌들로선 피할 곳이 없어졌다.

세무당국의 감시방법이 고도화되자 재벌의 수법도 더욱 교묘해졌다. 어디를 뜯어봐도 ‘탈세’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틈없이 작업을 한다. 재벌들은 이를 ‘절세’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수법 중 하나가 이른바 비상장사를 통해 재산을 넘기는 것이다. 먼저 재벌 총수 일가족이 대주주로 참여하는 비상장 계열사를 세운 뒤, 이들 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이 집중적으로 일감을 몰아줘 회사를 키우는 방법이다. 대부분 내부에서 수의계약으로 거래가 이뤄지니 수익률은 높고, 이렇게 올린 수익을 대주주인 가족에게 배당금으로 나눠주기 때문에 ‘불법’은 찾아내기 어렵다.

실제 재벌닷컴이 최근 재벌그룹 총수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사의 내부 매출 비율(계열사 매출/전체 매출)을 조사한 결과 평균 46.1%에 달했다. 매출의 절반이 계열사 거래로 이뤄진 셈이다.

이는 조사대상 20개 재벌그룹의 전체 내부 매출 비율인 28%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어서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재벌 총수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사의 영업이익률과 순익률은 25%에 달해 전체 평균인 10%선보다 무려 2.5배나 높았다.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남긴 이익은 고스란히 대주주의 몫으로 돌아간다. 굴지의 한 재벌그룹 계열 비상장사는 지난해 670억원의 순이익을 남겨 배당금으로 500억원을 대주주들에게 주었다. 이 회사는 전체 매출의 60%가량이 내부 매출이었다.

또하나 주목할 부분은 재벌 총수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사들이 영위하는 사업이다. 조사대상 비상장사 가운데 제조업은 단 2곳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계열사의 전산시스템이나 부동산 혹은 빌딩을 관리하는 서비스업종의 회사였다. 말하자면 투자금액은 적게 들고, 수익성은 높은 ‘편한 사업체’들인 것이다. 제조업체도 계열사에 생산제품을 납품하는 부품회사였다.

문제는 이렇게 집중지원을 통해 키워진 비상장사 중 상당수는 적절한 시기에 상장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주식투자자 입장에선 재벌 총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는 사업의 안정성과 수익성도 높기 때문에 투자 0순위 기업이다. 따라서 이들 회사는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고, 결국 대주주는 막대한 상장차익까지 챙기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엄청난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지만, 사실 ‘불법’이라고 꼬집어낼 여지는 거의 없다. 기껏 상장차익에 대한 과세를 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대주주들이 얻는 상장차익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 수준이다.

재벌이야기

최근 정부가 재벌가의 비상장사를 통한 부의 대물림에 과세를 하는 등 감시기능을 강화한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줄타기하는 과세당국과 재벌의 묘수경쟁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주목된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