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야기]계열사 조세피난처로 ‘위장전입?’

얼마 전, 재벌닷컴은 조세피난처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30대 재벌그룹(자산순위)의 계열사 231곳을 발표한 적이 있다.

국세청 전경. | 김창길 기자

조세피난처는 기업이나 개인의 소득에 대한 세금이 거의 없고, 정보도 공개하지 않아 비자금이나 핫머니가 활개치는 지역이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G20 정상회를 통해 탈세의 온상인 케이먼, 마샬군도,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35개국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조세정보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국세청도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기업이나 돈많은 개인의 역외탈세를 추적해 과세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닷컴의 조사 결과는 언론과 국민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실제로 국세청은 지난 2002년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역외탈세를 한 65개 기업에 4110억원을 추징했고, 지난해에도 4개 기업 및 사주의 역외탈세를 적발해 무려 3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부과했다.

조세피난처를 통해 이루어지는 역외탈세 정보가 공개된다면 국세청으로선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30대그룹의 조세피난처 소재 계열사 명단을 발표한 뒤 재벌닷컴은 하루 종일 문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대부분은 “(계열사의 소재지가) 조세피난처이긴 하지만 대부분 실제 영업을 하고 있는 회사”라는 해당 재벌그룹의 해명이었고, 몇몇 재벌은 “여론 호도”라며 막말까지 퍼부었다.

사주 개인재산 피난은 찾기 힘들어
어떤 언론은 계열사 현황보다는 해당 재벌의 해명을 더 크게 보도한 곳도 적지 않았다. 사실 조세피난처에 있다고 모두 탈세 목적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CJ그룹처럼 대부분의 조세피난처 계열사가 제조업체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날 빗발친 해명 전화 가운데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주인공은 잘 나가는 10대그룹 중 한 곳의 오너 가족인 듯했다. 그는 “명단 중에 ‘00’이 있나요? 이 회사는 계열사가 아니라 (저의) 개인 명의로 된 것이니 빼주세요”라는 것이었다. 명단에 없다고 하자 처음에 걱정스런 목소리였던 그가 대뜸 “조사가 잘못 됐네”라며 시빗조로 태도가 돌변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조사에 대한 불신인지, 아니면 불만인지 알 길이 없었다. 10여분 동안 이어진 그의 불만은 “방금 얘기한 회사를 명단에 넣어드리면 되느냐”고 하자 “뭔 X소리냐”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면서 끝이 났다.

나중에 그가 말한 이름을 찾아본 결과 조세피난처에 소재하고 있는 금융투자 회사였다. 이 회사는 몇 년 전부터 특정 재벌그룹 계열사 주식을 1000억원어치 이상 사들여 주요주주로 있었다.

재벌이야기

사실 조세피난처에 있는 재벌그룹 계열사는 공개된 회사라는 점에서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사주가 개인 재산을 빼돌려 자신의 명의로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차려놓고 ‘돈놀이 탈세’를 하고 있다면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쯤되면 우리도 미국 재무성의 비밀조사국 수준의 전문 추적반이라도 만들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