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연중기획]상하이는 신문물·신사상의 중심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도시의 변화상, 다국적 문화 공존하는 용광로

어떤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상하이는 무엇보다 그 규모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상하이는 서울 크기의 도시 11개를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이다. 인구는 서울의 2배 가까운 1900여만명이다. 지난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역사연중기획 시리즈 연재를 위해 김호기·박태균 교수와 함께 찾은 거대 도시 상하이는 여러 가지 다채로운 모습이 한데 뒤엉켜 있는 용광로 같은 도시였다.

상하이는 다채로운 모습들이 뒤섞여 있는 용광로 같은 도시다. 사진은 상하이 도심.

한국인에게 상하이는 무엇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도시다. 상하이 도착 첫날인 8월 19일 오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한여름 열기가 엿가락처럼 들러붙어 있는 상하이 도심 한편에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임시정부 청사의 주소지는 상하이 루완구 마당루다. 상하이 도심 한복판에 있긴 하지만 대형 마천루들이 늘어선 대로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어서 차량이나 유동인구가 많지 않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 수립됐다. 임시정부는 여러 도시를 전전했다. 처음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는 항저우, 자싱, 전장, 창사, 류저우, 치장 등을 거쳐 1940년에는 충칭으로까지 자리를 옮겼다. 마당루 임시정부 청사가 임시정부가 사용했던 상하이 내 유일한 청사인 것도 아니다. 마당루 청사는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임시정부는 그 이전까지 상하이 시내에서 이 건물 저 건물을 옮겨다녔다.

임시정부 청사는 3층짜리 연립주택이다. 1932년에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난 후에는 중국인이 이곳을 인수해 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관리사무소가 생겼고, 1993년과 2002년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거쳐 지금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관리사무소에는 간단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직원 2명이 입장권을 팔고 있다. 입장권 가격은 15 위안(약 2500원). 임시정부 청사에는 신발을 신은 채 그대로 들어갈 수 없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천으로 된 덮개를 신발에 씌워야만 한다. 바닥이 모두 마루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도 금지된다.

19세기 이후 중국 근대화 역사 응축
건물 자체는 낡고 위층으로 이어지는 목조 계단은 비좁았지만 내부는 단정했다. 1층 시청각실에서는 독립운동 관련 영상물을 상영한다. 2층은 백범 김구 선생의 집무실과 각 부처 장관의 집무실이다. 각 부처 장관 집무실에는 탁자와 의자, 필기도구와 찻잔 등이 깨끗하게 복원돼 있다. 3층은 자료 전시관이다. 당시 외교부에서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낸 독립승인 요구서,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 독립신문 등이 전시돼 있다.

중국인에게 상하이는 중국의 현대를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상하이라는 도시의 역사에는 19세기 중반 이후 중국이 겪은 근대화의 역사가 응축돼 있다.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난징조약을 체결하고 5개 항구를 개방한다. 상하이는 이때 개방된 5개 항구 가운데 하나였다. 상하이는 1860년 무렵 이미 중국 대외무역량의 63%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왼쪽 _ 지난 8월 19일 오후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입구에 줄 서 있다. 오른쪽 _ 푸단대 정문 앞에 서있는 중국 어린이들. 정문 뒤로 마오쩌둥 동상이 보인다.

상하이는 개방적인 도시다. 인구 구성부터 그렇다. 2007년 기준으로 상하이에 호구를 갖지 않은 외지인 비율이 26%다. 1930년대에는 오히려 상하이 토박이의 비율이 30% 가량이었다. 문화적으로는 더욱 다채롭다. 개항 이후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의 조계지가 들어서 있던 상하이는 자연스럽게 다국적 문화가 녹아들었다. 이는 건축물들을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황푸장 인근 와이탄 지구에 들어선 건축물들은 대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들로, 상하이에 유럽 도시의 정취를 불어넣고 있다.

상하이는 중국이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상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상하이는 1911년 신해혁명의 핵심 지역이었다. 또한 상하이는 중국 공산당이 탄생한 곳이자 중국의 개혁개방을 선도해온 중국 정치 엘리트 집단인 상하이방의 근거지다. 장쩌민 전 총서기, 주룽지 전 총리, 리란칭 전 부총리, 첸지천 전 부총리 등이 모두 상하이방 출신 엘리트들이다.

베이징과의 오랜 라이벌 역사 간직
상하이방이 권력 중심에 포진하는 역사는 고스란히 상하이와 베이징의 오랜 라이벌 역사와 겹친다. 상하이는 마오쩌둥의 세번째 부인인 장칭을 비롯한 문화혁명 4인방의 거점이었다. 이들은 1976년 쿠데타를 모의했으나 발각돼 실패했다. 1980년 이들에 대한 공개재판이 베이징에서 시작됐다. 장칭·장춘차오는 사형을 선고 받았고, 야오원위안은 20년형, 왕흥원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중국 내에서 상하이 문화는 상업적이고 실용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베이징 문화는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하이의 현재를 대표하는 것은 화려한 야경과 엑스포다. 상하이 야경의 중심은 와이탄 지구다. 상하이 도심 조명 사업은 1989년부터 시작됐는데, 현재 상하이에는 30여개의 주요 경관 조명 지역이 형성돼 있다. 건물이 현대식 초고층 건물이냐 근대 서양식 건물이냐에 따라 조명의 특색이 다르다. 와이탄 지구의 근대식 건물은 지나친 화려함을 자제한 반면, 패션 중심지인 화이하이루의 조명은 서울 강남 한복판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했다. 상하이시는 2001년부터는 건물 내부에서 외부로 조명을 비추는 방식을 사용해 건물 내부 조명을 밤늦게까지 켜둔다고 한다.

지난 5월부터 시작해 10월 말에 폐막하는 상하이 엑스포를 위해 상하이시는 개최가 확정된 2002년 이후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다른 엑스포와는 달리 시 중심지를 엑스포 장소로 선택했다. 엑스포 부지의 4분의 3이 신도시 지구인 푸둥 지구에 몰려 있다.

근대 이후 개방적인 성향을 유지해온 상하이에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몰려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세계 500대 기업 중 450여개 기업이 상하이에 진출해 있고, 지역본부만 해도 180여개가 넘는다.

2010 연중기획

상하이는 이처럼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과거와 현재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이다. 베이징의 칭화대에 비견되는 상하이의 명문 푸단대 교정에는 마오쩌둥 동상이 서 있다. 8월 20일 오후, 어림짐작으로도 3m는 넘을 듯한 커다란 마오쩌둥 동상은 푸단대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기에 바쁜 아이들과 관광객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서있었다. 상하이는 이처럼 어느 한 측면으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프리즘 같은 도시였다.

<중국 상하이ㅣ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