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연중기획]망국의 한을 품은 조선 청년들은 왜 상해로 갔나

독립의 희망 꿈꾸며 근대문화 습득

상해는 떠오르는 중국의 상징이다. 도심 곳곳에 치솟은 마천루와 명품관으로 즐비한 번화가를 누비는 젊은이들은 중국에 몰려드는 자본의 힘을 웅변한다. 한 세기 전 나라를 빼앗긴 조선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상해로 갔다. 상해는 난징조약 이후 서양 열강의 조계지로 중국 내 서구문화 수용의 근거지이자 중국 공산당의 제1회 전당대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무엇이 망국의 한을 품은 청년들을 상해로 데려간 것일까.
그들은 그곳에서 어떤 꿈을 꾸었던가. 박태균 교수는 지난 8월19~21일 상해를 찾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했다. <편집자 주>

중국 상해 푸둥지역의 마천루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중국 사람들은 상해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상해는 떠오르는 중국(rising China)의 상징이다. 푸둥 지역의 마천루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이다. 그래서 푸둥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웨이탄 지역에 가면 관광객보다도 중국인들이 더 많다. 그리고 올해 상해에서는 엑스포가 열렸다.

상해에서 만난 한 중국인 제자는 기어코 ‘신천지’를 가자고 했다. 상해에서 가장 맛나는 맥주를 파는 곳이 있다고 하였지만, 말 그대로 중국 내 ‘새로운 세상’을 한국에서 온 ‘촌놈’ 선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신천지에서 3년 전에 갔던 상해와는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운 건물이나 상점도 그렇지만, 눈에 띄게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요일을 가리지 않고 항상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하는 상해 여행은 일면 짜증을 나게 하기도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중국의 변해가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다양한 느낌을 준다. 한국인들에게 상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고,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일으켰던 장소이지만.

19세기 이후 중국 개방·문명의 상징
이러한 변화는 비단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에만 나타났던 것이 아니다. 19세기 이래 문을 연 중국에 있어서 상해는 개방의 상징이요, 문명의 상징이요, 예속의 상징이었다. 상해는 고래로부터 유명한 도시는 아니었다. 수천년 간의 중국사에서 어떤 왕조도 상해에 주목하지 않았고, 한반도와 일본으로부터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이전에는 무역의 중심지가 되지 못했다.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호(扈)라는 낚시 도구를 만들어 연명했고, 이 호를 이용하는 어부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상해에서 활동했던 조봉암은 자기 딸의 이름을 ‘호정’이라고 짓기도 했다.

내가 상해에 있는 동안 내 처가 찾아와서 오년간 동거했고, 딸을 하나 낳아 이름을 호정이라고 지었는데, 상해의 고명이 호이기 때문에 상해에서 얻었다는 뜻으로 호정이라고 했다.(조봉암, ‘내가 걸어온 길’[“진보당” 수록], 1957년)

그러던 상해는 난징조약 이후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은 상해를 열었던 것이다. 가능하면 수도 북경에서 멀고 내륙으로의 교통도 불편하면서, 서양의 요구대로 항구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을 고르다가 선택한 곳이 상해였다. 그리고 상해에서는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서양의 열강들은 상해 이곳저곳을 분할하기 시작했다. 1854년 태평천국의 전쟁 중 치외법권의 조계지가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상해 조계지를 이리저리 쪼갰다. 아마 조선이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인천이 상해와 비슷하게 되었을 것이다. 조계지가 만들어지고 서양의 자본이 들어오면서 상해는 아시아 경제의 중심지이자 근대의 상징이 되었다. 20세기 초 상해는 런던과 뉴욕 다음으로 큰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푸둥의 맞은 편에 있는 푸서의 오래된 서양식 건물들에는 지금 중국의 국책 은행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과거에는 제국의 금융기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한 축을 담당했던 씨티은행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첩에는 이 지역에 있었던 과거 씨티은행 지점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그래서 상해는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도시였다. 우선 상해는 독립운동을 위해 가는 곳이었다. 서양의 영사관과 접해 있기 때문에 외교활동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조계지의 치외법권으로 인해 일본의 탄압을 피하기 용이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초기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 땅을 밟았다. 후에 초대 대통령이 되는 이승만도, 2·8독립선언서를 기초했지만 가장 대표적인 부일협력자로 변신하는 이광수도,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던 김구도 모두 상해에서 활동했던 시기가 있었다. 1910년 자기의 정부를 잃고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던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상해는 훌륭한 망명지가 되었으며, 독립의 희망을 꿈꾸는 곳이었다.

위 _ 상해의 신천지 노상카페에 모여든 손님들.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졌다. 아래 _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다른 한편으로 상해는 청운의 꿈을 품은 조선의 청년들이 발을 딛는 곳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한다하는 청년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공부할 곳이었다. 이제 더 이상 성균관은 없었다. 그리고 1920년대 다양한 전문학교들이 설립되기 이전까지 한다하는 젊은이들이 공부할 곳은 한반도 내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나마 일본 제국주의가 몇 개 대학을 설립하였지만, 여기에는 조선으로 이식해 온 일본인들이 들어가고 남은 자리에 한하여 조선인 청년들의 입교가 허락되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일본으로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조선인들에게 일본 유학은 꿈조차 꾸기 힘든 일이었다. 김성수와 같이 돈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다. 오죽하면 조봉암과 같은 ‘촌 사람’이 유학가는 것이 신문에 다 실렸겠는가?

강화도 부내면 관청리에 거주하는 조봉암군은 재작년 조선독립만세 관계로 1년 유여의 철창생활을 하다가 만기출옥하야 재가(在家) 정양 중이더니 금반 유학차로 거(去) 7일 상오 7시 30분발 부산행 열차로 동경을 향하얏다더라. (“동아일보” 1920년 7월 11일자)

청운의 꿈을 품은 조선 청년의 신천지
일본으로 갈 돈이 없는 청년들, 특히 선교사들의 후원을 받았던 사람들은 중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자 했다. 식민지 청년으로서 돈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권이나 비자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이들에게 조계지가 있는 상해는 서양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며, 동시에 ‘신천지’로 가는 중간 기착지가 되었던 것이다. 중국인으로 국적을 바꾸어 여권을 얻어 미국으로 유학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가 된 박헌영이 영어를 배우러 갔던 곳이 상해였다. 미국 유학을 가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건국동맹의 여운형은 상해 금릉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했다.

조선의 청년들이 대책없이 찾아오던 상해. 그곳에 있던 지사들은 조선의 청년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23년 9월에는 상해에 남화(南華)학원이 설립되었고, 여운형이 교장으로 있었던 인성학교 내에는 예비강습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때 김규식과 함께 여운형·현진건이 영어, 최창식·서병호가 수학, 김문숙이 중국어, 김두봉이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다고 한다.(“동아일보” 1924년 6월 6일)

상해에 있는 지사들 중에서도 특히 김규식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가 이 시기 독립운동과 후학들을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는 그가 병이 나서 혹이 생겼다는 소문이 국내에까지 퍼졌다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개벽」 62호(1925년 8월)에 ‘밧게 잇는 이 생각, 異域風霜에 氣體安寧하신가’라는 글이 실렸는데, 여기에서 김규식을 당시의 호인 만호(晩湖)로 지칭하면서 ‘기이한 병을 얻어서 혹이 하나 더 생겼다는데, 해외에 있는 우리 사람들이 독립혹이라고 이름지었다’고 적고 있다.

상해에서 식민지 조선인들의 생활은 결코 풍족한 것이 아니었다. 해외에 있는 인물 중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은 김규식과 안창호뿐이라고 했던 이광수는 당시 상해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회고하였다.

가끔 양식이 떨어져서 이제는 고인이 된 신정(申檉)씨한테 얻어 먹은 일도 있다고 기억된다. 그 때 신정씨는 우리가 있던 집보다 좀 큰 집을 얻어 7, 8명의 학생을 묵도록 하였고, 또 영어강습소도 경영하였다. 신채호와 김규식씨도 이 집에 기거하였다. 이를테면 1913년 경에는 상해뿐만 아니라 강남 일대 조선인 망명객의 본거지였다. 동제사라는 결사에도 신정씨가 지도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 사람이 가는 곳에는 곤궁함이 따른다. 프랑스 조계 한켠에 모여 있던 조선인 망명객들에게는 가끔 식량이 끊어지는 위기가 있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즐기는 담배를 피지 못하다가 밥을 지어주는 중국인 하인의 호의로 자전차표(自轉車票) 한 각을 얻어 갱생의 기쁨을 찬양한 것이든지 조용은(趙鏞殷) 군이 모자와 구두가 없어서 맨머리, 슬리퍼 바람으로 프랑스 공원에 볕을 쪼이러 다닌 것밖에 출입을 못한 것이라든지 다 그때 생활을 대표하는 사례들이다. (“삼천리” 제7호, 1930년 7월 1일자, 이광수, ‘인생의 향기’)

푸단대학 정문 앞에 선 박태균 교수 뒤로 마오쩌둥의 동상이 보인다.

상해는 다른 한편으로 근대문화가 넘쳐 흐르던 곳이었다. 외국제 자동차들이 굴러다녔고, 서양식 카페에 앉아 서양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서양식 영화와 춤과 음악이 넘쳐나는 곳. 상해는 1920년대 한국의 영화감독 정기탁이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해서 영화 ‘애국혼’을 만든 곳이며, 1930년대 중국을 주름잡던 최초의 한류스타 영화배우 김염이 활동했던 도시이기도 했다. 한 해 5편 내외의 영화가 만들어졌던 식민지 조선과는 달리 상해에서는 매년 400편이 넘는 외화가 수입되었고, 500여편의 영화가 자체 제작되고 있었다.

이렇게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상해는 도피처이자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요한 통로였다. 특히 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수립은 더 많은 조선인들이 상해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 100년 전 경술국치가 있었다면, 중국에는 99년 전 신해혁명이 있었던 것이다. 왕조가 몰락하였지만, 중국의 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수립한 새로운 공화국이 조선인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을까?

서양식 영화와 춤과 음악이 넘치는 곳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 상해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경술국치. 그 100년 후 다시 찾은 상해의 신천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맥주집에서는 원더걸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노래뿐만 아니라 춤까지도 외우는 듯했다. 제국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상해가 일본의 침략, 문화혁명 시대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2010 연중기획

그리고 그 안에서 과거와는 다른 오늘의 중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천지의 바로 옆에는 중국공산당 제1회 전당대회가 열렸던 일대회지(一大會址)가 위치하고 있었다. 마오쩌둥도 이 대회에 푸난지역의 대표로 참여했다. 그리고 김규식이 영어를 가르쳤던 푸단대학의 정문 바로 뒤에는 거대한 마오쩌둥의 동상이 서 있었다. 세계화 교육의 1번지인 푸단대학과 문화혁명을 지도했던 마오쩌둥. 이 두 개의 상징이 마치 물과 기름인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 오늘 중국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아, 그래서 영어를 배우러 상해에 갔던 박헌영이 공산주의자가 되었구나. 제국의 시대 조계지가 있었던 상해는 바로 역설의 공간이었다.

<글·박태균 서울대 교수,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