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스크린]‘해방 공간’에 대한 추억

(주)데이지엔터테인먼트

2008년 6월의 어느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던 날에 밤 내내 비가 내렸다. 동이 트면서 비는 그쳤다. 사람들은 기차놀이를 했다. 목이 터져라 외치던 ‘쇠고기 재협상’ 구호도 다소 식상해진 아침이었다. 군복을 입은 청년들은 도로 곳곳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미끄럼을 탔다. 이미 밤새 내린 비로 속옷은 흠뻑 젖은 상태였다. 민경배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날의 놀이판을 두고 “우린 이미 승리했다”라고 썼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은 1969년 8월 미국 뉴욕에서 14.4㎞ 떨어진 화이트레이크 인근 베델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다루는 건 무대에 선 지미 헨드릭스의 황홀경에 빠진 기타 솔로도 아니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존 바에즈도 아니다.(마틴 스콜세지가 편집한 영화 <우드스탁>(1970) 덕분에 우리는 우드스탁 무대에 선 유명가수의 공연 장면에 익숙하다) 영화는 이곳에서 여관을 운영하던 청년의 시각으로 이곳에 모여든 다채로운 군상과 사건들,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한편에서 베트남전 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면 일단의 페미니스트들은 브래지어 착용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누군가는 “민중에게 권력을!”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또 다른 일단은 숲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봉고차 안에선 LSD의 힘을 빈 환각 파티가 벌어지는가 하면, 덤불 숲 속에서는 레즈비언들이 서로 얽혀 있다. 아이들과 부모가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수많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고 공존하는 축제이자 해방구였다.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우리에게 그런 해방과 희열의 때는 언제였을까. 1987년 6월이 그랬고,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가 그랬다. 2004년과 2008년 촛불이 그랬다. 돌이켜보면 이질적이고 다양한 주장과 행동이 섞여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존재하는 해방의 공간엔 주인이 없다. 다시 말해 참가자 모두가 주인이다. 2002년에 어떤 이들은 “파시즘의 전조를 느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저항과 다른 맥락으로 쏟아져 나온 대중에 대한 당혹감이다. 2008년에 누군가는 서울광장과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진 ‘술판’을 비난했다. 역시 전통적인 질서가 붕괴할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다. 1969년, 베델 마을의 일부 주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각에서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돈에 환장한 유대인과 아무나 강간하고 훔치는 히피들’의 합작품이었다. 이들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개최하겠다”고 선언한 주인공 타이버와 자신의 목장을 행사장으로 빌려준 맥스 야스거를 공공연하게 비난한다. 타이버가 언제나 아침을 해결하던 동네식당은 ‘더 이상 그에게 줄 음식은 없다’고 선언한다.

영화는 원작이 있다. 바로 영화의 주인공 엘리엇 타이버가 쓴 자전소설이다. 영화에서 타이버는 다소 망상기가 있지만 건전한 청년이다. 우드스탁과 함께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뀐다. 자기 안에 내재한 동성애적 본성을 깨닫게 되고, 우연하게 다른 사람이 건넨 마리화나 덕분에 페스티벌 개최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자유에 대한 역설을 한다. ‘극적인 변화’를 묘사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다. 원작 소설을 보면 그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유치하기 훨씬 전부터 동성애자였고, 기자회견장에는 떨지 않기 위해 마리화나를 스스로 대여섯 대 피고 나타난다. 영화로 각색되면서 페스티벌 개최권을 박탈하기 위해 열린 시의회에서 타이버와 친구들이 벌이는 분투라든가 한밤중에 화이트레이크에 반대파를 불러내 뇌물을 건네는 장면 등은 빠졌다.

영화의 감독은 <와호장룡>이나 <색,계> <브로크 백 마운틴>을 만든 리안이 맡았다. 얼핏 봐선 이 동양계의 감독이 적임자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최근작에서 두드러지는 ‘소수자’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시선을 떠올린다면 이 ‘역사적이며 예외적인 사건’을 그만큼 솜씨 있게 다룰 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실재 인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타이버의 책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1년 뒤 세상을 떠났다.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 어머니는 1990년대 초까지 유대인 양로원에서 살다가 역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때 자신이나 아들 타이버가 우드스탁 행사를 열었다는 것이 창피한 일이라며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말라고 아들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영화는 지난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됐다.

제목: 테이킹 우드스탁

러닝타임: 120분

감독: 리안

출연: 디미트리 마틴, 에밀 허시, 이멜다 스톤턴

개봉: 2010년 7월 29일

터치 스크린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