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스크린]SF 스릴러의 새 도약

기계를 통해 다른 사람과 꿈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생각을 훔치기도 하는 가까운 미래. 꿈 전문가인 돔 코브(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한때의 의혹으로 인해 신분을 숨기고 떠도는 도망자 신세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대부호 사이토(와타나베 겐 분)로부터 “젊은 사업가 로버트 피셔(킬리언 머피 분)의 기억을 조작해 주면 과거의 기록을 말소시켜 주겠다”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은 코브는 이를 수행키 위해 최고의 능력이 있는 말 그대로 드림팀을 구성한다. 애초 쉽지 않던 계획은 예상대로 어려움을 거듭하지만 뜻밖에도 코브가 떨쳐내지 못하는 과거의 비밀이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걸림돌로 된다.

1999년 발표된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는 장르영화의 판을 뒤엎은 일대 혁명으로 기억된다. 360도로 설치된 수십 대의 카메라들을 통해 대상을 면밀히 잡아내는 일명 ‘플로모’ 기법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비주얼 아이디어의 혁명을 성취해 냈다. 또 성서를 주축으로 한 다양한 신화에 근간을 두고 있으면서도 형태적으론 한창 발전하고 있던 정보통신(IT) 산업과 사이버 이미지를 적극 반영해 낸 세계관은 현대인들의 적극적인 공감과 지지를 끌어냈다. 이후 이에 영향을 받은 많은 유사 작품이 출몰했지만 <매트릭스>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창조자인 워쇼스키 형제 역시도 한참 기대에 못 미치는 속편과 차기작들을 내놓았다. 그만큼 <매트릭스>가 뒤엎은 주류 상업영화의 판도는 획기적이고 확고하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인셉션>은 감히 모처럼 <매트릭스>에 비견할 만한 SF 스릴러의 진일보를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기본적으로 범죄 스릴러의 구조 위에 진행되는 이야기는 꿈이라는 범용적 소재를 통해 상상과 허구 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독특한 무대 설정은 현실적 공간의 한계와 고정관념을 단숨에 파괴하고 있으면서도 설득력을 지닌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가중된 다중적 시간 개념은 이제껏 스크린 위에 투영되는 평면적 볼거리라는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단숨에 허물면서 단편적인 전개에 의존하던 ‘이야기’의 체계를 입체적 트릭으로 재구축한다.

사람에 따라 꽤나 혼란스럽고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이 작품이 요란하게 던진 트릭이란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음이 금방 들통 난다.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획기적인 지식의 충전이나 세상을 음미하는 철학적 심미안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영상과 치밀한 영화 구조가 직조돼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운 및 재미가 제공하는 다른 측면의 지적 쾌감은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2억 달러에 이르는 제작비, 6개국 로케이션, 화려한 출연진 등 표면적인 규모도 막강하지만 이 영화가 역설하는 가장 큰 가치는 영화계뿐만 아니라 현대사회 전반에서 생존을 위한 최선의 가치로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는 ‘창의성’ 그 자체다. 그 중심에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이 서 있다. <인셉션>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는 ‘기억’과 이에 대한 집요한 탐구 의식 및 확장은 그의 데뷔작 <메멘토>에서도 흥미롭게 다뤄졌다. 이후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등을 통해 다양하고 성공적인 실험을 감행한 그는 배트맨 시리즈의 최신 판인 전작 <다크 나이트>로 흥행과 비평 면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둠으로써 블록버스터를 조리하는 테크닉까지 확고히 아우른다. <인셉션>은 그동안 실험되고 쌓인 놀런 감독의 내외적 재능이 비로소 집대성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추상적인 소재를 단순한 미끼나 소재로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가공해 작품 구조의 일부로까지 승화해 낸 결과는 대단한 재능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남다른 상상력과 할리우드의 거대 흥행자본 및 첨단의 테크닉을 효율적으로 접목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인셉션>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확고히 다진 것은 감독만이 아니다. 주연을 맡은 레어나도 디캐프리오 역시 큰 수혜자가 될 듯 하다. 앞서 선보였던 <셔터 아일랜드>에 이어 연타석 안타를 날림으로써 자신의 배우 가치를 한 단계 높이고 있다.

제목: 인셉션
(Inception)

제작 연도: 2010년

국가: 미국, 영국

러닝타임: 142분

장르: SF, 액션, 스릴러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출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와타나베 겐, 조지프 고든레빗, 엘런 페이지, 톰 하디

개봉: 2010년 7월 21일

터치 스크린

등급: 12세 관람가

최원균<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