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탐사저널리즘 20년의 역사

「PD수첩」 제작진 지승호 지음·북폴리오·1만6000원

MBC를 두고 단순히 큰 규모의 방송사가 아니라 영향력 있는 언론사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상당 부분 「PD수첩」 때문일 것이다. 1990년 5월 8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이 한 시간짜리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숱한 화제를 뿌리며 한국 저널리즘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방송 20주년을 맞은 「PD수첩」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나왔다. 책은 인터뷰 전문 작가 지승호씨가 역대 PD 9명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묶었다. 역대 제작진의 입을 통해 듣는 「PD수첩」의 역사다.

프로그램의 산파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윤영 전 PD는 “운 좋게도 내가 첫 삽을 뜨게 된 거다”라고 말한다. “사회 문제와 이슈를 다룬 프로그램은 PD들의 오랜 숙원”이었는데 민주화 이후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생겨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이 마련되자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 「PD수첩」이라는 얘기다.

프로그램 방영 초기만 하더라도 “PD가 별짓을 다 하네”라는 말이 나왔다. KBS의 <추적 60분> 같은 예외가 있긴 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저널리즘은 기자만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PD에게는 불리한 점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자와 달리 PD에겐 출입처가 없다. 기자처럼 주요 정부기관이나 기업체의 요직에 있는 인사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없었다. 대신 PD들은 거리로 나갔다. 노동부 공무원이 아니라 해고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났다.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를 보는 대신 노숙자들의 사연을 취재했다.

PD들은 “기술이나 능력보다는 뜨거운 가슴”을 통해 한계를 도리어 강점으로 만들었다. 출입처가 없었으므로 출입처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았다. 정치 권력, 경제 권력, 종교 권력의 부정과 부패를 자유롭게 비판했다. 이들에겐 그 앞에서 적당히 타협하거나 물러서야 할 성역이 없었다.

성역 없이 바닥을 누비고 다닌 PD들은 굵직한 특종들을 쏟아냈다. ‘진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의 ‘협박’과 ‘압력’은 PD들을 괴롭혔다. 만민교회 사건 보도 때는 방송국 주조정실이 점거당했다. 담당 윤길용 PD는 한동안 경찰과 사설 경호원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황우석 사건 보도 때 담당 PD들은 사내에서조차 궁지에 몰렸다. 지난 20년 동안 이런 일이 부지기수다.

권력은 끊임없이 「PD수첩」을 길들이려 했다.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PD들이 겪고 있는 고초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권력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다. “어떤 정치 권력이든 자기 아픈 곳을 건드리는 언론은 좋아하지 않는다.”(김환균 PD)

저널리스트에게 철의 법칙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줘야 하는 게 언론이다.”(송일준 PD) “공익이라는 관점에서 국민들이 꼭 알아야 될 것에 대해 탐사저널리즘의 성역 없는 접근이 필요하다.”(최진용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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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들은 「PD수첩」이 없어도 되는 세상을 바란다.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정부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네티즌이 잡혀 가고, 쇠고기 수입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PD들이 잡혀간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