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Place]양고기 스테이크와 여행의 추억

- 서교동 양고기 전문점 ‘야오램’

사시케밥.

몇 해 전, 뜻한 바 있어 미련 없이 길을 떠난 적이 있다. 일본과 뉴욕을 거쳐 멕시코와 쿠바, 칠레, 페루를 돌아 LA를 통해 서울로 돌아오는 황당한 여정의 기간은 모두 석 달간이었다. 혼자 가는 여행이라 몸도 마음도 단출했고, 무엇보다 여행을 통해 내 삶이 더 윤택해지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여정과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래도 석 달 동안이나 나가 있는데 고추장 같은 것 좀 챙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아서라, 세계화된 입맛이고 나름 세련된 처지에 구질구질하게 그런 걸 뭐’ 하는 기분에 그대로 ‘고고씽’했다. (물론 그 석 달 동안 내 입맛이 얼마나 토속적인지 몸서리치게 깨달았다.)

여하튼 그렇게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역시 음식의 선택이 늘 고민이었는데, 맵고 짜고 달고 시고와 같은 음식 ‘간’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매번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그걸 어떻게 먹을 것인지 고민이었다. 사실 혼자 가는 여행에서는 음식을 주문하기가 모호한 경우가 참 많다. 일단 야채와 국물이 있는 것들은 실패 확률이 높으니 제외하고, 생선도 의외로 비려 못 먹는 것이 있어 몇 번 호되게 당하고 난 뒤 제외하고, 결국 빵과 고기를 주식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와 닭, 돼지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하루는 삶은 것, 하루는 구운 것, 하루는 튀긴 것을 먹다 보니 결국 물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양고기를 처음 먹었던 것은 페루에서였다. 완전히 뒤집어진 속으로, 누군가 김치나 고추장 한 숟가락만 입에 퍼 넣어준다면 영혼이라도 넘겨줄 수 있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마추비추’로 가는 재래시장 한 귀퉁이에서 무슨 고기꼬치 같은 것을 파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음식은 언뜻 보기에도 ‘불그죽죽’한 소스가 발라져 있어 왠지 매콤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장 달려가 묻지도 않고 입에 넣었는데 도대체 무슨 소스인지는 몰라도 맛은 고추장 양념구이 같았다. 그렇게 정신 없이, 앉은 자리에서 몇 개를 더 먹고 나서야 ‘아, 근데 이거 소나 닭이나 돼지는 아닌데…’ 싶어 확인해 보니 양이었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이따금 양고기에 끌릴 때가 생긴 것은 그 때문이다.

이름도 내막도 모르던 그 양고기를 추억하기를 몇 해. 얼마 전 우연히 홍대 앞에 있는 ‘야오램’이라는 양고기 전문점을 발견했다. 물론 ‘야오램’은 먼지 풀풀 날리던 페루의 양고기와 격이 다른 음식점이다. 호주산 10개월 미만의 양고기만 사용하며, 허브와 육쪽 마늘, 로즈마리, 바질 등을 베이스로 고기 맛을 더하고, 다들 피하고 싶어 하는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완벽히 제거했다. 양고기의 육질이야 소나 돼지보다 월등히 나으니, 결국 맛과 향을 모두 제대로 잡아낸 셈이다.

까다로운 고기 선정부터 맛을 내기 위한 일련의 과정도 깐깐하기 이를 데 없다. 소금과 후추 간으로 기본에 충실하며, 초벌구이한 고기를 식탁 위 직화구이판에서 재벌로 구워내는데, 구워먹는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 ‘딱’이다 싶다. 특별히 매운 맛을 좋아하는 그 남자 같은 사람은 매운 소스를 발라구운 ‘사시케밥’과 ‘카사블랑카’ 메뉴 중 매운 맛을 선택하면 된다. 양은 냄새가 나서 별로라는 사람,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에 싫증난 사람이라면 꼭 페루나 남미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 해도,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음식이다.

세상은 넓고 음식은 많다. 이렇게 기회 있을 때 양고기 스테이크 한 번 썰면서 새로운 음식 한 번 즐겨보는 것이, 봄날 웬만한 여행 가는 것보다 낫다는 말씀 드리면서 이만 총총….

야오램

위치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403-4

그 남자의 Place

문의 02-322-3378

그 남자 탁현민 (tak0518@hanmail.net)
맛집과 가고 싶은 곳을 멋대로 소개한다. 정말 괜찮은 Place는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알려주는 친절함도 갖추고 있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주)피당 Creative director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