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오바마에 기대 거는 미 우정

오바마 지지를 결의한 미집배원노조 대의원대회.

버락 오바마의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미국 대통령이 탄생하자 온 세계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미국인은 미국인대로, 외국인은 외국인대로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 섞인 전망을 하기에 바쁘다.

그중에서도 미 우정청의 오바마에 거는 기대는 다른 어떤 집단보다 크다. 우정청 직원은 거의 노조원이고, 노조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온 만큼 우정청이 오바마 정권에 희망을 품는 게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우정청은 지금 사상 최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가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독자 생존이 어려운 처지다. 이럴 때 시장을 앞세우는 정권이 아니라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 보편적 서비스로서 우편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정권을 만난다는 것은 우정청에 구세주나 다름없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바다를 소나기 맞으며 항해하는데 등대를 발견한 기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연방정부 기관인 우정청은 물론 입을 열 처지가 못 된다. 그러나 우정청의 양대 노조는 오바마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환영하는 성명을 냈다. 30만 명의 도시집배원이 속해 있는 전미집배원노조(NALC)는 윌리엄 영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내어 “집배원들은 오바마 표를 미 전역에 실어나르는 데(to deliver) 앞장서왔다”면서 “오바마 정권은 미국의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새로운 날들을 가져다 줄(deliver)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배달·전달 등의 뜻을 나타내는 단어 deliver를 반복해서 쓴 게 흥미롭다. 집배원의 존재를 은근히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우체국의 우편원·정비원 등 27만 명이 속해 있는 미 우편노조(APWU)는 노조사무실에서 오바마 당선 축하모임을 열고 그 의미를 새겼다. 윌리엄 버러스 노조위원장은 “이번 선거는 미국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직접 참여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선거는 가르쳐주었다”며 감격해했다.

사실 양대 노조는 일찌감치 오바마 지지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이들 노조원도 우리 체신노조나 공무원노조처럼 공무원 신분이지만 우리와 달리 정치활동이 허용돼 있어 가능한 일이다.

집배원노조는 민주당 후보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 조합원 여론조사를 통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기로 결정,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다 오바마가 경선에서 승리하자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어떤 경우에도 공화당 정권에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선거운동도 열심히 했다. 집배원노조는 집배원 300명을 31개 주에 보내 오바마 진영을 도왔으며, 선거 막판에는 ‘노조에서 보내는 중요 메시지’라며 ‘경제위기 속에서 누가 우리 편인가’라는 제목의 비교표를 홈페이지에 띄우기도 했다. 우정사업에 대한 매케인과 오바마의 견해 차이를 오바마 편에서 정리해놓은 것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이렇다.

“매케인-집배 업무를 비노조, 저임금, 민간업자에 넘기는 것을 지지한다, 오바마-그 같은 집배업무 아웃소싱에 반대한다. 매케인-노동자의 노조 결성 자유에 반대한다, 오바마-노조 결성 및 더 나은 삶을 위해 협상할 자유를 지지한다. 매케인-우리 의료보조비에 세금 물리려 하며 연 평균 2500달러 세금 인상 계획이다, 오바마-모든 이의 질 높은 의료를 위해 노력한다.” 비교표에는 마지막 결론으로 ‘매케인-근본적으로 틀렸다, 오바마-우리 편이다’라고 적혀 있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이 표를 보고 매케인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APWU의 버러스 위원장은 오바마 당선이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는 여러 차례 공개 석상에서 “우리에게 이번 선거는 낙태나 총기, 테러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무조건 오바마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 당일에는 ‘투표하라’는 메시지를 통해 “당신의 일자리와 미래가 한 표에 달렸다”며 투표장으로 갈 것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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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우정청의 두 노조원 57만 표는 오바마에게 몰표로 갔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이룬 정권 교체의 공로에 대해 오바마 정권이 어떻게 화답할지, 그래서 위기의 우정청을 과연 구출할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우리와는 여러모로 상황이 다르지만, 세계 최강국의 우정이 맥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