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최악 상황에 처한 미 우정청

미 코네티컷주의 한 우체국.

미 우정청이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편물 급감에 따라 매출은 사상 최대의 폭으로 떨어지는데, 나라 경제는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다. 이러다간 우정청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지 않느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미 우정청 주변에선 요즘 220년의 미 우정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들이 조만간 한꺼번에 터질 것 같다는 전망이 쉴새없이 쏟아져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게 해고다.

우정청 직원은 미국에서 철밥통 중 철밥통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히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해고될 위험은 전혀 없다. 지금까지 해고한 적도 없다. 여기에 정년마저 없으니 체력만 뒷받쳐주면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이 우정청이다. 그런 기관에서 사상 첫 정리해고를 한다는 것이다. 이달 초 언론에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4만 명 해고가 기정사실처럼 돼버렸다. 우정청 또한 공식 발표는 아니어도 잇따른 관련 보도에 입장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해고를 검토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해고는 다른 모든 길을 찾아본 뒤 마지막에 선택할 것이다” 또는 “근무연수 6년이 안 돼 법적으로 해고가 가능한 직원이 1만6000명으로 파악됐다.”

우정청은 지난 9월 16년 만에 조기퇴직(early-out)을 실시했다. 나이 50세 이상이면서 20년 이상 근속자 또는 25년 이상 근속자에게 자격을 주고 신청을 받은 결과 해당자 7만2000명 중 5%인 3685명이 퇴직 신청을 냈다. 우정청 전체 직원이 정규직만 68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미미한 숫자다. 16년 전에는 조기퇴직 수당으로 6개월치 월급을 줬으나, 이번에는 그 같은 인센티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직원들 사이엔 ‘기다리면 더 좋은 조건이 제시되겠지’ 하는 기대감이 없지 않았는데, 이는 현실을 모르는 얘기일 뿐이라고 우정청 관계자들은 잘라 말한다. 실제 조기퇴직 신청 후 한 달도 안 되어 해고라는 초강력 수단이 등장한 것이다.

해고라고 하면 노동자들은 목숨 걸고 반대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우체국의 우편원, 정비원, 차량기사 등 27만 명이 소속해 있는 미우편노조(APWU)의 11~12월호 기관지에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 실렸다. 이 노조의 윌리엄 버러스 위원장이 존 포터 우정청장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형식의 글이다. <워싱턴포스트>에서도 인용 보도한 이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정청은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당신이 노조 운영방식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우정청 운영에 대해 언급을 자제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국면이다. 중대한 전략 수정이 없다면 우정청은 정부 기구로서, 또 보편적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위기의 근원은 물론 우편물 급감이다. 올 한 해 12%가 줄면서 적자가 23억 달러에 달했다. 내년엔 경제위기의 여파로 우편물이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요금을 무한정 올릴 수도 없고, 도대체 탈출구가 안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정청은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태세다. 제일 먼저 나오는 게 주5일제, 즉 토요일 배달 폐지다. 이 사안은 비용 절감 얘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으나, 보편적 서비스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노조 등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엔 때가 때여서인지 집배원 노조에서도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세분화된 집배 루트를 절반으로 줄이는 업무 구조 조정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집배원의 가방은 더 무거워지지만 우체국으로선 인력을 조금만 써도 된다. 그밖에 신규 채용 전면 금지, 전보·이동 전면 금지, 우체국 고정비 감축 등의 조치로 허리띠를 꼭꼭 조여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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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우정청에 비교하면 우리의 우정사업본부는 초우량 기업이다. 10년 연속 흑자에 10년 연속 공공부문 고객만족도 1위를 자랑한다. 그러나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체국이라고 해서 추위를 타지 않을 수 없다. 정경원 우정사업본부 본부장이 최근 감량 경영을 지시하면서 “다함께 힘을 모아 불황을 이겨내자”고 직원들을 독려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