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사찰음식‘몸은 건강하게, 마음은 맑게’

제철 재료와 천연 조미료 사용한 ‘자연의 맛’

서울 인사동 ‘산촌’은 사찰음식으로 꽤 명성이 나 있어 많은 외국인이 찾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한식당이다. 8월 21일 평일 저녁 100여 명의 손님이 대청마루를 가득 메우고 있다. 웰빙 바람과 함께 치솟고 있는 사찰 음식의 인기를 실감하고도 남는다. 20여 가지의 코스 요리가 준비되어 있다.

세상이 온통 먹을거리 걱정이다. 도대체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이다. 비만의 원인이 되는 정크푸드, 농약투성이 농작물, 식품 첨가물을 가미한 가공식품, 여기에 광우병과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식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의 건강 음식’으로 각광받는 게 바로 ‘절밥’으로 불리는 사찰 음식이다. 음식의 공포는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는 데서 시작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찰 음식은 과식에 대한 욕망과 이 욕망을 자극하는 ‘스피드 사회’에서 벗어나 소박함과 자연을 그대로 지키는 슬로푸드다.

지자체 한류관광상품으로 선보여

경기 여주의 걸주쟁이네 사찰 음식. <경향신문>

사찰 음식은 말 그대로 절에서 스님이 먹는 음식이다. 육류나 해산물, 고기와 오신채(五辛菜·자극적인 다섯 가지 채소류 음식으로 파·마늘·달래·부추·무릇), 화학조미료 등을 넣지 않은 철저한 채식 위주의 식단이다.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은 깨나 콩, 부각 등으로 보충한다. 계절마다 산야에서 나오는 냉이나물, 취나물, 씀바귀, 고사리, 도라지 등 각종 싱그러운 나물을 주로 이용한다. 여기에 오이·고추·깻잎·산초 같은 여러 장아찌류에 버섯구이·도토리묵무침 등 반찬과 잡곡밥·청국장을 곁들인다.

이같이 육식을 피하는 사찰 음식이 대표적인 웰빙음식으로 부각하고 있다. 미국의 한 유력 언론이 사찰 음식을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는 음식’이라고 소개한 일이 있다. 고무된 정부는 사찰 음식을 한국의 대표 브랜드 음식으로 육성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사찰 음식을 한류 관광상품으로 선뵈고 있다. 불교계 역시 사라진 사찰 음식을 복원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사찰 음식은 투박한 음식의 대명사다. 불교에선 식사 자체를 중요한 수행으로 여긴다. 사찰 음식을 통해 생명도 받고, 건강도 받고, ‘도(지혜)’까지 받는다. 불교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스스로 정토가 되기를 추구하는 종교다. 자유자재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면 의식주는 물론, 삶의 어느 것에도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

모든 일상사가 수행이다. 그런 점에서 음식을 대하는 스님들의 자세는 수행과 섭생은 하나라는 이른바 선식일여(禪食一如)의 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음식이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생명이다. 산 속에 피어나는 야생화 하나도 태양(에너지)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수도는 음식을 적게 가려서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행자는 정오에서 다음 날 일출 때까지 음식을 먹지 않는 일일일식의 계율을 중시한다. 아직도 남방불교에서는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오후 불식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때 아닌 때’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계율의 실천은 과식의 유혹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몸과 마음의 정제와 그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그뿐 아니다. 스님의 얼굴에 윤기, 몸에 윤기, 눈에 총기, 가슴에 정기를 키우는 최우선적 수행법이 소식이다. 부처님도 하루 1식이 좋고, 2식은 괜찮으나 3식은 좋지 않다. 4식이면 반드시 탈이 나고 5식은 도리어 허기가 지며 6식이면 매우 해롭다고 지적했다. 경북과학대학 정세채 교수는 “스님들의 지혜와 깨달음의 세계에는 지혜로운 음식의 철학과 원리가 있다”고 말했다.

불교에서 오신채를 금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오신채를 익혀 먹으면 마음이 황폐해진다고 믿는다. 또 날로 먹으면 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수행하는 이들에게는 맞지 않는 음식인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만든 것 중 하나가 선식이다. 아주 옛날 스님들은 구걸 수행을 통해 끼니를 해결했다. 사실 사찰 음식이라는 게 없었다. 그러던 것이 불교와 화랑도가 만나면서 선식이 출현했다.

신라의 화랑도가 명산과 대천을 찾아다니며 수련할 때 간편하게 가지고 다녔던 영양식이 선식이다. 7가지 곡식을 섞어 만들어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 이후 승려나 수도자들이 오랜 기간 토굴 참선, 동안거·하안거 등 수도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하는 고단백 영양식으로 이어지다가 편리함과 높은 영양가가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즐겨 먹는 식품으로 발전했다.

7가지 곡식이란 현미·찹쌀·보리쌀·검정콩·검정깨·들깨·율무를 말한다. 장기에 부담이 적고 간편하다. 또 섬유질과 기름, 향미가 알맞게 혼합되어 포만감은 없어도 기력을 강화·유지시켜 맑고 총기 있는 정신건강을 지니게 해준다는 특징이 있다. 7가지 곡식을 혼합한 일반 선식과 7가지 곡식 외에 채소나 해조류 등을 첨가하여 영양식과 체중조절식·간보호식·변비개선식·위보호식 등 기능성 선식이 있다.

조리시간 짧아 영양소 파괴 적어
사찰 음식의 특징은 제철 재료와 천연 조미료를 사용하며 자극적인 양념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다양한 조리법이 발달했고 장아찌 등 보관성이 좋은 염장 음식이 많다. 사찰음식연구소 홍승 스님은 “육류나 어패류는 노린내나 비린내 등 나쁜 냄새가 강해 마늘과 파 등 오신채를 양념으로 쓸 필요가 있겠지만 채소 요리에는 오신채가 필요없다”며 “각각의 채소가 가진 특유의 향기를 잃지 않도록 오신채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요리법을 설명했다. 그는 또 “사찰 음식의 장점은 조리시간이 짧고 그만큼 영양 파괴가 적어 바쁜 현대인들에게도 적당하다”며 “자연이 주는 좋은 선물인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이 건강에도 좋다”고 덧붙였다.

캠페인

스님에게 음식과 수행이 불가분의 관계이다 보니 재료부터 요리법까지 청정한 식생활이 사찰의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환경오염 등으로 건강을 위협받는 현대인에게 무공해 사찰 음식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세채 교수는 “소에는 전분 소화 효소가 없어서 음식을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한다”면서 “그 음식물 찌꺼기가 산화물질로 변하면서 광우병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화 잘 되는 음식을 권하고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피하라는 경고다. 물론 사찰 음식에는 소화불량을 유발할 만한 음식이 거의 없다. 스님들이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는 이유도 바로 섭생과 수행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