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71) 폭력과 광기로 이끄는 최음제, 클래식

<font color="#cc6600"><b>굿바이 클래식</b></font><br>조우석·동아시아·2008

굿바이 클래식
조우석·동아시아·2008

내 기억에 조우석은 항상 신문기자다. 조우석이라는 이름이 가장 강렬하게 새겨진 것은 문화일보에서 북리뷰 팀장으로 일할 때다. 물론 실제로 그를 본 것은 아니다. 문화일보 북섹션에서 읽은 그가 쓴 서평에 대한 얘기다. 조우석이 쓴 서평의 문체는 항상 날이 서 있었다. 윤기가 나고 참신하면서도 그 특유의 까칠함으로 촌철살인이 무엇인지 보여주곤 했다. 삐딱하게 보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조우석의 서평을 읽기 위해 한동안 일부러 북섹션이 나오는 날의 문화일보를 가판대에서 사곤 했다. 그가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겼다는 얘기를 바람편으로 들었다. 그 뒤로 문화일보에서 북섹션을 읽는 재미가 시들해졌다. 그렇다고 중앙일보 북섹션을 읽는 재미가 새로 생기지도 않았다. 어쩐 일인지 중앙일보로 옮긴 뒤 조우석이 쓴 서평들은 내가 알던 ‘조우석표 스타일’이라는 게 빠져버린 듯 밋밋하고 싱거웠다.

그가 새 책을 냈다. ‘굿바이 클래식’이다. 반가운 것은 이 책의 문체에서 그 ‘조우석표 스타일’이라는 게 온전히 살아났기 때문이다. 한때 물 건너온 서양 음악의 세례를 받고 그 만신전(萬神殿)을 지키는 수문장 노릇을 자임하던 시절을 회고한다. 고교 시절부터 서양 클래식 듣기에 빠져 물 건너 사람들의 조상이 만든 음악을 두루 섭렵하며 그것의 광팬임을 자인하고, 마니아로 ‘오타쿠’로 살았던 그 시절의 조우석은 자신의 고백대로 “뼛속까지 서구인이었고, ‘미스터 클래식’이었다.”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난 그가 제 DNA는 바꿀 수 없었을 테니, 그는 본질에서 ‘서구인’은 아니다. 클래식의 세례를 받은 뒤 그 서양 음악의 내면에 새겨진 DNA로 제 안을 착색한 뒤 ‘서구인’으로 인종적 망명을 하고, ‘서구인’ 노릇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기독교도에서 동양의 선불교로 개종하듯이 클래식에서 재즈로 음악적 전향(轉向)을 한다. 클래식의 열혈 신도에서 이탈해 배교자가 되어버린 것, 그의 표현에 따르면 ‘화이트 콤플렉스’를 벗어버린 것이다. 서양 음악에 대한 소양과 취향을 키우고 그 안에서 제 인격적 동일성을 찾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자기와 자기가 아닌 것의 차이를 인식하고 자기다움으로 돌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차피 클래식은 그 태생적 배경부터 자기와 다르며, 그 안에서는 영원히 동화되지 못하는 인격적 이물이요, 객체일 테니까. 자기가 아닌 것 속에서 자기를 찾았다고 믿던 착종된 의식에서 깨어날 때 자기와 자기가 아닌 것의 차이가 더 극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가 오랫동안 마음을 주고 몸담던 클래식에서 빠져나와 그것의 그릇됨과 못됨을 천하에 일러바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한 장면. 히틀러는 평소 이 오페라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음악의 위계 서열에서 맨 윗자리에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구의 제국주의적 문화가 우리 안에 심어놓은 문화적 편견 혹은 이데올로기의 결과일 뿐이다. 조우석의 말대로 “음악의 위, 음악의 아래는 없다.” 플루트와 대금, 혹은 바이올린과 해금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은 악기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다. 클래식과 우리 전통음악인 정악(正樂)에는 어떤 우열 관계가 성립되지 않듯 두 악기 사이에 우열 관계는 없다. 클래식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 태생을 보자.

“기독교 음악이라는 자궁에서 배태된 클래식은 제국의 후광 아래 삽시간에 전 지구를 점령했다.”서양에서 발흥한 제국은 팽창하면서 저 변방들에 서양 것은 좋은 것이다, 라는 이데올로기를 뿌리고, 그 이데올로기의 세례 안에서 버섯처럼 피어난 것이 향서(向西) 취향이다. 클래식에의 빠져듦은 그 향서 취향의 발현일 뿐이다. 그 취향의 폐해는 그것 말고 토속적인 것은 다 열등한 것이라는 멘탈리티를 구조화해놓는다는 점이다. 조우석은 클래식에 작동하는 그 ‘배제의 원리’를 일러바친다. “기독교-클래식-이성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삼각 동거 구조가 키워낸 것이 바로 ‘배제의 원리’라는 것이다.

클래식은 그 자체로 거대 산업이자 권력이다. 그 뒤에는 서양 제국주의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다. 서양의 근대 계몽주의는 서양이 아닌 것은 다 ‘후진성’의 범주로 묶어버린다. 그것을 이데올로기로 포장해서 세계에 유포한다. 클래식이 아닌 것은 전부 하위의 범주로 묶고, 비서구 음악을 음악의 영역에서 쫓아내는 마녀 사냥을 벌인다. 클래식에 작동하는 무의식 안에는 그런 ‘외곬과 독선’이 숨어 있다. 서양의 발명물인 기독교나 이성을 중심으로 떠받드는 서양 철학도 마찬가지다. 조우석은 클래식의 본질을 “외양적으로 정교하게 보이지만 빤한 이디엄의 반복, 작곡가 중심주의-악보 중심주의라는 독재, 따라서 음악사에 둘도 없는 연주의 종속적 위치 전락, 콘서트홀이라는 매우 기형적인 액자 무대, 단조로운 형식의 되풀이”라고 본다. 클래식은 진화가 멈춰버린 음악이다. 밖에서 주어졌든아니면 안에서 만들어냈든 클래식이 표준음악으로 군림하며 닫힌 음악으로 굳어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확정성과 미니멀을 끌어안고 소리의 대극인 침묵까지 음악의 한 요소로 적극적으로 차용한 존 케이지의 실험은 의미 깊은 움직임이다. 존 케이지가 1954년에 발표한 피아노곡 ‘4분 33초’는 곡명이 지시하는 시간만큼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그냥 앉아 있다가 4분 33초 뒤에 퇴장한다. 그때 청중의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4분 33초’의 음악이다. 클래식에서도 파열이 일어나고, 진화의 기미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딴 크레머라타 발티카와 연주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그는 이미 탱고 음반을 10장 가까이 펴내고 탱고 연주 사중주단을 조직했다.

조우석은 클래식이 정서 순화는커녕 오히려 태생적으로 공격적인 정서를 지니며, 그 안에 “독선의 형이상학 또는 살인광 음악의 성격”이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아돌프 히틀러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조우석은 히틀러의 통치 행위를 바그너 오페라 속의 캐릭터를 현실에 재현하는 “판타지와 함께 하는 영웅 놀음”이라고 말한다. 무고한 유대인 수십 만 명을 도륙하고, 세계를 전쟁의 화염 속으로 몰아넣은 히틀러의 멘탈리티 배경으로 “클래식과 근대적 이성”을 꼽는다. 나치 장교들은 자기 방에서 클래식에 취해 있다가 밖으로 나와서 게토 안에서 뛰노는 유대인 아이들을 향해 재미삼아 총질을 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아이들을 보며 짜릿한 쾌감에 몸을 떨었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살인마 한니발 렉터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은 뒤 엽기적 살인 행위를 저지르곤 했다. 이 믿기 어려운 폭력과 광기 앞에서 서양 음악은 무력하다. 무력할 뿐 아니라 오히려 폭력과 광기의 그럴 듯한 장식물 노릇을 할 뿐이다. 우리가 그토록 찬미하고 음악의 정전(正典)으로 떠받든 클래식이 폭력과 광기로 이끄는 최음제라는 게 믿어지는가? 조우석은 “클래식의 숨겨진 뒤통수가 이토록 섬뜩할 수도 있다”고 우리에게 계속 상기시킨다.

독서일기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을 조우석의 주장은 음악 권력으로 군림한 클래식의 본질에 대한 불경한 폭로이자 발칙한 대거리로 읽힌다. “우아하고 중후한 것” 이면에 숨은 치사한 인종주의와 더러운 구별 짓기의 실상을 신랄하게 열거하며 조우석은 그것에 제 귀와 마음을 내주던 시절에 대해 몸서리를 친다. 그는 왜 이런 책을 썼을까? 클래식은 “구한말 이후 우리가 잠시 잠깐 현혹돼온 ‘세련되고 깔끔한 그 무엇’을 총칭”하는 표상물이다. 그것에 정신을 몽땅 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클래식에 넋을 잃고 있는 동안 우리 귀와 정신은 서양 정념의 식민지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조우석이 클래식의 배교자가 되어 클래식에 감춰져 있던 그릇됨과 못된 구석을 일러바치는 것은 이제 음악 듣기의 주권을 찾고, 서양 식민지 노릇하기를 그만두자는 번개와 같은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장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