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토크]석유시대의 묵시록 피하기

안병옥<환경연합 사무총장>

오일피크와 피크오일은 단지 낱말 순서만 바뀐 것이 아니다. 둘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존재한다. 오일피크란 말에는 석유문명에 의지하는 이들의 욕망이 숨어 있다. 이 단어에는 유전개발과 석유 채굴, 유통, 소비 단계의 기술 발전을 통해 석유문명의 종말을 연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반면 피크오일에는 석유 매장량이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다.

자동차의 연료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었던 10년 전과 ‘만땅’을 채우기에는 호주머니 걱정부터 앞서는 오늘의 현실을 비교해보라.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시대가 찾아온 지 오래다. 텅 빈 연료 게이지를 바라보며 우리는 서서히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저유가시대가 되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석유 품귀가 불러올 암울한 미래를.

석유시장에 이어 식량시장에도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콩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코앞에 다가섰다는 불길한 예감은, 지구온난화가 몰고 올 기후변화와 석유가격 앙등에 연동한 농산물 생산단가 상승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흔한 것으로만 여겼던 옥수수가 식량과 바이오에너지 원료라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때, 우리는 문득 에너지 위기가 곧 식량 위기라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린다.

저유가시대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
기실 우리는 식량이 곧 에너지이며 식량문제의 배후에 에너지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한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인류가 두 배로 증가하는 것을 목격한 지구 역사상 최초의 무리다. 인구 폭발과 더불어 식량과 에너지 부족이라는 유례없이 거대한 압력에 직면한 사람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더욱이 우리 국민은 이러한 압력에 알몸으로 노출돼 있다. 석유가 없으면 당장 모든 사회 시스템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석유중독사회, 식량자급률이라고는 쌀 빼면 5% 선에 머물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국제유가 폭등으로 휘발유 소매가가 서울지역은 ℓ당 1700원이 넘어섰다. 지난 1월 초 경기도 자유로 인근 주유소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가격경쟁을 하고 있다.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내다 팔아 아무리 많은 돈을 벌면 뭣에 쓰나. 정작 내 아이 배 불릴 밥을 살 수 없고, 추운 날 식솔들 몸 온기를 위해 태워야 할 석유와 가스를 살 수 없다면. 그런 날이 문득 쏟아지는 여름 폭우와 같이 우리를 후두두 두들길 날이 멀지 않았다. 이 냉혹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줄 거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자. 정부는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더 팔아 밥도 사고 석유도 사자는 용렬한 글로벌 경제에 올인한 지 오래다. 새 정부는 낡은 정부보다 그걸 더 속도감 있게, 확실하게 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덕분에 선택받았다. 이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 해도 자라나는 아이들만은 살리고 싶은 당신,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에너지 위기는 곧 식량 위기 불러
집 있는 사람은 당장 집 팔고 세입자는 보증금 빼서 시골 한구석 텃밭농사일망정 내 식구 먹일 밥은 내가 책임져야 할까? 혹시 곡식을 거둘 때쯤, 돈 주고도 못 살 그 ‘밥’을 굶주린 이웃들에게 강탈당할 수도 있으니 농사를 좀 넉넉하게 지어야겠지. 하지만 석유는? 자동차야 세워두면 그만이지만, 아이들 잠든 방 데우려면 장작이라도 패야 할까?

이런 얘기를 제발 과장이나 겁주기로 치부하지 않길 바란다. 물을 천천히 가열하면 개구리들은 끓는 온도가 되도록 냄비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우리 역시 슬로 비디오처럼 다가오는 석유시대의 종말을 느끼지 못한다면 묵시록은 우리 세대 내에 현실이 될 것이다.

무슨 농담을 그리 지독하게 하느냐고? 쯧쯧, 아직 정신 못 차리시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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