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연말 ‘바닥보기운동’은 옛말

디지털 시대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1974년 연말 우편물로 분주한 중앙우체국 모습.

연말이 되면 우체국마다 ‘바닥보기운동’을 하던 때가 있었다. 우편물이 아무리 많아도 접수한 그날 남김없이 처리해 반드시 바닥을 보이게 해야 한다는 작업장 캠페인이다. 클린 플로어(Clean Floor)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북한의 새벽별보기운동을 연상케 하는 다소 자조적 뉘앙스의 용어여서 우체국 내부에서만 은어처럼 쓰였다고 우정사업본부 김동룡 사무관은 전한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이 운동은 곧 수명이 끊어졌다. 연말연시라고 해서 우편물이 예전처럼 폭주하지 않으니 굳이 바닥 비우기를 독려하지 않아도 배달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설이나 추석처럼 특별소통기간을 따로 정하고, 특단의 대책을 세울 필요도 없어졌다. 기존 인력이 평소보다 조금만 바쁘게 움직이면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통계를 보자. 2002년 12월 우편접수 물량은 5억9900만 통이다. 절대량도 많지만, 다른 달에 비해서도 25%가량 많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우편물은 4억6000만 통이다. 4년 만에 1억4000만 통가량 급감한 것이다. 지난해 우편물 월 평균량이 4억 통이니 15% 정도 늘어난 수준이다. 연말이 되어도 크리스마스 카드나 새해 연하장을 예전처럼 보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긴 요즘엔 무슨 날만 되면 우체통 대신 휴대전화가 쉴새없이 울어대지 않는가. 카드나 연하장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대신하면서 우체국 수입은 줄고 이동통신회사만 돈 버는 시대다.

시대가 변하면서 연말 우본이 세우는 우편물 대책은 바닥보기가 아니라 세일(SALE)이다. ‘요금을 깎아드리겠으니 많이 이용하시라’고 권하는 것이다. 단 국내 우편이 아니라 국제우편, 그것도 성탄·연하카드에 한해서다. 12월 한 달간 지역에 따라 20~30%를 할인해준다. 이 연말 세일을 시작한 지도 몇 년이 되었지만, 국제우편은 2005년 12월 185만 통에서 지난해 12월 166만 통으로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우리와 달리 외국에선 12월이 여전히 우편물 폭주의 달이다. 우체국마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고 비상작전을 펼친다. 미 우정청(USPS)은 12월 중 국내외 우편물량을 200억 통으로 보고 있다. 3만7000개 우체국에서 직원 70만 명이 트럭 20만 대를 이용해 분주히 움직인다는 계획이 서 있다. 국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이전에 배달되기를 원한다면 일찍 발송해달라”고 당부하기에 바쁘다. 피크는 17일(월)이다. 예년 자료로 추정하면 이날 하루 접수물량만 카드와 편지가 2억7500만 통, 다른 우편물까지 합치면 10억 통이다.

영국 우정청인 로열 메일 역시 12월 17일을 피크로 본다. 12월 우편물 20억 통 중 1억2300만 통이 이날 집중된다고 보고 신발끈을 조여매고 있다.

실제 배달은 얼마나 잘 될까. 정시 배달률과 관련한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외신 보도를 보면 영국민들의 만족도가 그리 높은 것 같지 않다. 지난 11월 16일자 가디언지는 로열 메일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면서 책임감이 없는 비정규직이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고 우체통에 쑤셔박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시민단체의 폭로를 전하고 있다. 로열 메일이 콜센터를 통해 자체 집계한 배달 관련 고객 항의 사례는 지난 한 해 11만3600여 건이지만, 상당수의 고객 항의는 집계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기사 말미에는 “배달되지않는 사례가 있으면 로열 메일 고객센터에 꼭 항의하세요”라는 안내와 함께 전화번호가 쓰여 있다. 불신의 강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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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배달률은 어떨까. 통상우편물은 D+2일, 그러니까 접수일 이후 이틀 내에 배달되는 비율이 98%다. D+3일이면 99.5%가 배달된다. 바닥보기가 없어진 요즘엔 연말연시에도 이 배달률이 지켜진다.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배달률을 지키기 위해 평소 시험 메일을 보내는 등 수시 점검 시스템이 있다고 김상원 물류기획팀장은 전했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