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백수의 왕’ 전설에서 현실로

백두산호랑이 명맥 잇기 결실 맺나…암수 한 쌍 다시 들여와 적응 단계

‘백두산호랑이 2세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국 방문 당시 장쩌민 전 중국 주석으로부터 백두산호랑이 백두(당시 4세·수컷)와 천지(당시 3세, 암컷)를 기증받으면서부터였다. 이후 호랑이부부를 관리해온 국립수목원은 개체 번식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백두산호랑이는 우리의 설화, 속담 곳곳에 등장하는 한민족의 상징이다. 이마에 대왕(大王)이라고 새겨놓고 ‘내가 동물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백두산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 근처에서 포획된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사라졌다. 당시 백두와 천지는 한민족의 상징을 되살린다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국립수목원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두가 췌장염에 걸렸던 것. 170㎏에 달하던 백두의 체중은 90㎏까지 줄어들었다. 병이 낫는데만 2년 가량 걸렸고 1998년에 이르러서야 체중을 회복하는 등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설상가상, 천지가 백두를 거부했다. 호랑이는 암컷 한마리를 놓고 수컷 서너마리가 싸움을 벌인다. 경쟁에서 이긴 용감한 수컷이 암컷에게 다가갈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백두는 온순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첫 ‘합방’ 때 천지는 백두의 귀를 물어뜯었고, 그후 백두는 천지의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국립수목원 산림동물원의 동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직 수의관(75)은 그때부터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우선 야생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우선 먹이 대신 산 토끼나 산 닭을 우리에 넣어줬다. 처음에는 산 토끼를 보고 도망가던 백두와 천지는 점차 익숙해져 잡아먹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야생성 회복이 번식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다음 단계로 2~3일 동안 먹이를 주지 않았다. 야생에서는 한번 먹이를 먹은 뒤 며칠 동안 굶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성교육 비디오’ 틀어주며 독려

문제점을 눈치챈 국립수목원은 2000년부터 중국의 협조를 구했다. 구체적인 협상이 이뤄진 것은 2003년 제4차 한중임업협력회의에서였다. 당시 한중 양국은 일단 전문가가 한국에 와서 백두와 천지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번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가서 추가기증을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그리고 2004년 중국 둥베이호림원의 전문가 3명이 국립수목원을 방문했다. 일주일 동안 백두와 천지를 살펴본 이들은 번식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격, 즉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

결국 2005년 5월 한중 양국은 한국이 요구하는 백두산호랑이 1쌍을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호랑이를 담당하는 국립수목원 김현중 식물조사과장과 이상직 수의관 등 관계자 4명은 둥베이호림원을 방문했다. 현재 중국에서 사육하고 있는 백두산호랑이는 약 600마리에 이른다.

빠르면 내년 5~6월 ‘결실’ 나와

김 과장은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성경험이 있을 것 ▲출산경험이 있을 것 ▲다 자란 호랑이 중 어린 호랑이일 것 ▲백두산 일원에서 포획된 개체의 후손일 것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이 조건에 맞는 것이 이번에 들어온 두만과 압록이었다. 압록이는 올해 3마리를 낳은 경험이 있으며 두만이도 성경험을 갖고 있다.

현재 국립수목원은 두만이와 압록이의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두만이는 어느 정도 안정을 취했으나 아직 압록이가 불안정한 상태다. 국립수목원은 두만·압록이와 함께 입국한 둥베이호림원 관계자 중 1명에게 압록이가 안정을 취할 수 있게 1주일 동안 더 남아달라고 부탁했다. 둥베이호림원의 왕윈펑 사육사(35)는 압록이가 태어날 때부터 지켜본 이라 그 누구보다도 압록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중국에서는 넓은 곳에서 생활하다가 좁은 곳에 갇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안정을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사육사와 수의관 등 직접 관계자를 제외한 모든 이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안정을 취하는데 예상되는 시간은 대략 1~2개월. 순조롭게 교배가 이뤄진다면 내년 5~6월에는 멸종된 이후 최초로 순수혈통 백두산호랑이가 탄생하게 된다.

2세가 탄생하면 국립수목원은 백두산호랑이 종보존을 위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국립수목원 김현중 과장은 “아직까지는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 둥베이호림원의 호랑이와 계통분류를 한 뒤 근친교배가 되지 않도록 혈통 교류를 이뤄나가기로 했다”며 “이를 통해 유전적으로 독립적인 개체가 늘어나면 국내 동물원에 순수혈통 백두산호랑이를 보급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국, 가진 자의 여유

중국측은 일찍이 백두산호랑이의 종 보존에 앞장서 현재 600마리 이상의 호랑이가 당국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수가 많아서인지 중국에서는 호랑이를 숫자로 관리한다. 두만이와 압록이도 원래는 H-225와 H-226으로 불렸다. 백두산호랑이가 별로 없어 한마리 한마리에 천지, 백두 등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이름을 사용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이번에도 우리측이 원하는 이름이 있느냐고 묻자 중국측은 새시대라는 뜻인 ‘신기’와 당소속 여직원의 이름을 따 ‘원원’을 내놓았다고 한다.

사회

중국측은 최근 한국에 백두산호랑이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1994년 호랑이를 인수하러 중국에 갔던 정부관계자가 한국에 도착하고 난 뒤에야 호랑이 실물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중국측은 호랑이와 장소, 전문가를 제공하는 대신 한국측이 기자재를 제공하고, 전문가를 구성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 주무부처인 산림청은 두만·압록 기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야생동물보호기금으로 5만 달러를 기증한 상태라, 예산 문제로 확답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포천/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