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아무 데나 똥 싸지 맙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살면서 한두 번쯤 입에 올린 적이 있을 겁니다. 나쁜 놈을 무서워서가 아니라 상대할 만한 가치가 없어 피한다는 뜻입니다. 정면돌파보다는 슬쩍 비켜가거나 외면할 때 자기 합리화의 기제로 흔히 이 말을 쓰죠. 여기엔 좀 비열하거나 비굴한 철학, 또는 현실의 자조감이 담겨져 있습니다. 뭐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인생의 지혜로 볼 수도 있으니 그럭저럭 쓸 만합니다. 더러운 똥 치우려다가 개피 보는 것보다는 모른 척 피하는 게 백 번 낫지 않습니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더러워서 피해 다니는 똥이 사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짱가’나 ‘홍반장’처럼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잇감을 귀신처럼 찾아냅니다. 욕설은 기본입니다. 다짜고짜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고, 배째라 하고 드러눕기도 합니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인정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성과 논리 역시 안드로메다에 두고 다닙니다.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습니다. 그저 증오와 적대감만이 번뜩일 뿐입니다. 경찰도 슬금슬금 피합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 전설의 검찰까지도 안중에 두지 않습니다. 최근에 종북검찰이라고 한 번 혼났지요.

비단 정치적인 문제에 국한하지도 않습니다. 빈 틈만 보이면 어디든 들어가서 드러눕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못합니다. 이들에겐 불사신의 면모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시끄러운 똥을 싸질러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음에 또 나타나 똥을 싸지릅니다.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어떻게 계속 벌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똥 싸지르는 걸 비호하고 부추겨서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어둠의 손길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다들 슬금슬금 피하다보니 똥 싸는 사람들이 성역 같은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희한한 사회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들의 이름을 특정하지 못했으니 피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 저는 이들의 막무가내가 조금 무섭습니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짠 하고 나타나는 게 이것만이 아닙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마녀 사냥’에 재미들린 것 같습니다. 국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공식화한 이후가 가관입니다. 수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의원이 법을 어기거나 공동체의 근간을 부정했다면 처벌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사와는 별개로 이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방식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은 듯합니다. ‘마녀’라고 일단 낙인부터 찍고, 너도 나도 돌을 던지고, 화형에 처하라고 난리입니다.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도 전에 정치적 사망선고부터 내립니다. 자기 변호에 대한 권리, 합리적인 의심은 광풍에 묻히고 맙니다. 여론재판까지 해버리는 국정원의 원맨쇼에 삼권분립이 무너져내리는 데도 강 건너 불구경에 홀려 있습니다. ‘국정원의 인형’들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습니다. 마녀 사냥은 옳지 않고 비상식적인 일이었다고 누구나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가 하는 마녀 사냥엔 눈을 감습니다. 시대착오적인 주사파 나부랭이에 대한 공포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렇게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일까요.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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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면 나타나는 매카시즘과 집단 가학증 역시 똥 냄새가 장난이 아닙니다. 너무 구려 코를 움켜쥐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피해가야 합니다. 괜히 광풍의 똥을 치우려고 하다간 정 맞기 십상입니다. 국정원의 인형 노릇은 하지 않더라도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이 용납돼선 안 됩니다’라는 한 마디는 하고 가야 합니다. 똥이 더럽다고 피하기만 하고, 치우지 않으면 똥 천지가 돼버립니다. 똥 냄새가 진동해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똥을 피하기만 하다가, 똥 속에 파묻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요즘입니다. 제발 아무 데나 똥 싸지 맙시다.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