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눈치가 밥 먹여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일부 간부들이 최근 제주도 출장길에 골프를 친 사실이 ‘발각’돼 망신을 사고 있습니다. 앞서 LH는 내부 정보를 활용한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감사원 감사도 받았습니다. 지난 6월 발표된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 낙제점 수준인 ‘D(미흡)’ 평가까지 받은 상황에서 참 용감하다 싶습니다. 게다가 ‘낙하산’이니 ‘알박기’니 운운하며 문재인 정권 하에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에 대한 현 정부의 ‘물갈이’ 압력이 고조되는 국면 아닙니까. 복합경제위기의 선제적 대응과 솔선수범 성격을 강조하는 공공부문 개혁 논의도 한창이고요.

51일의 파업 끝에 노사가 협상을 타결한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두고서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경영진의 방만경영을 지적하는 여권의 공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노동계는 원청(대우조선해양)과 원청의 대주주(산업은행) 모두를 향해 책임을 묻고 있지만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7월31일 사퇴) 등의 질타는 유독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향합니다. 박 사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시절 임명될 때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 동생과 대학 동창이라는 등의 이유로 알박기 논란에 직면했더랬죠. 그는 이번 파업 사태의 후속조치를 마무리한 후 거취를 포함해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극도로 몸을 조심하며 업무에 매진해도 시원찮을 판에 LH의 간부들이 나 보란 듯이 ‘외유성 출장’에 나섰으니 지난해 4월 취임한 김현준 사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생겼습니다. 그 역시 문재인 정권 하에서 국세청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현 여권의 집중견제를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선 한 여당 의원이 LH의 기강 해이와 김 사장의 지휘감독 부실을 따지자 당장 한덕수 국무총리가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단호한 어조로 답변하더군요.

지금 국립고궁박물관(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에 가면 ‘독서당계회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가(史家)들은 그림의 배경을 성동구 옥수동 극동아파트 부근으로 추정합니다.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동호독서당’이라는 국가 인재양성기관이 이곳에 있었거든요. 주세붕, 송인수, 송순 등 관복을 입은 독서당의 젊은 관료들이 인근 한강변에 큰 배를 띄워놓고 풍류를 즐기는 실경이 담겨 있습니다. 일본에 넘어갔던 이 그림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환수했다고 합니다. 공직자라고 365일 국사(國事)만 들여다봐야 한다는 법은 없지요. 워라밸(업무와 일상의 균형)이라는 말처럼 적절한 휴식이야말로 창의성의 원천이요, 심기일전의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왕이 독서당의 유능한 문신에게 ‘특별휴가’를 내려 사실상 뱃놀이를 장려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하지만 휴식에도 바람직한 시와 때가 있습니다. 나라의 녹(祿)을 받아먹는 공직자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 정도 사리분별도, 정무감각도 없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 시간만 때운다면 임기를 채운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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